거세개탁(擧世皆濁)과 의료계
2013.01.03 08:25 댓글쓰기

전국 교수들이 선정한 2012년 대한민국 사자성어는 거세개탁(擧世皆濁)이었다.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이 쓴 ‘어부사(漁父辭)’에서 발췌한 이 성어는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의미다.

 

즉, 모든 사람이 혼탁해 홀로 맑게 깨어 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 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든 처지를 비유한 표현이다. 교수들은 이 고사를 통해 혼탁한 우리 사회에서 위정자와 지식인의 자성을 요구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수 년째 각종 규제정책에 힘겨운 저항을 하고 있는 의료계에는 더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킬 고사다.

 

‘불합리한 수가 결정체계 개선’이라는 외침은 매번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을 위시한 반대 논리에 묻혀 버렸다. 주변 어느 누구도 그 정당성에 공감을 해주지 않았다.

 

무소불위 정부에게 의료계의 울분은 소음에 불과했고, 국민들도 적정진료를 위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혀를 찼다. 의사들에게 작금의 상황이 딱 거세개탁(擧世皆濁)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교수들이 두 번째로 꼽은 사자성어 대권재민(大權在民)에 관심이 간다.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은 백성에게 있다’는 뜻으로, 정부를 향한 의사들의 심경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의료정책 입안과 집행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의사들이 ‘권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재감’은 인정받고 싶다는 의지의 발로다.

 

다시 말해 의료계의 목소리가 담긴 정책, 의료현실이 반영된 정책, 통제가 아닌 소통의 정책에 대한 염원이 바로 대권재민(大權在民)이다.

 

이러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정책기조에 변화가 없을시 벌어질 상황은 올해의 사자성어 3위를 차지한 ‘무신불립(無信不立)’에서 예측 가능하다.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이 성어는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을 논하는 정부가 꼭 귀담아야 할 메시지다.

 

그 동안 보험자인 정부와 공급자인 의료계의 관계는 ‘불신’으로 점철돼 왔다. 일방향적 정책에 대한 반감과 이를 지켜보는 못마땅함이 평행선을 달리며 불신을 키웠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구조에 변화가 없다면 건강보험 지속은 요원하다. 의료계를 진정한 정책 파트너로 인정하고 신뢰를 쌓아야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