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집(대한의사협회)의 붕괴
2014.08.11 15:05 댓글쓰기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 장에 간 큰아버지는 좀체로 돌아오지 않고 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 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 대학을 나온 사촌형은 이 세상이 모두 싫어졌다 한다.…(중략)…닭장에는 지난 봄에 팔아 없앤 닭 그 털만이 널려 을씨년스러운데...

 

신경림 시인의 ‘시골 큰집’이라는 시다. 그의 표제작 ‘농무(農舞)’에 실린 이 작품은 시골 큰집의 몰락을 통한 농촌의 공동화(空洞化)를 절묘히 승화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시는 근대화로 농촌이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할 무렵인 1973년 출간, 신경림 작가를 현대문학사에 농민문학 또는 민중 시의 단초를 연 인물로 각인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느 범부에게 그러하듯 그에게도 시골 큰집은 의지의 대상이자 안식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그 친근함과 소중함의 대상을 상실한 큰집은 더 이상 그의 마음을 보듬어 내지 못했다.

 

몰락한 큰집은 온정도 사물도 텅 빈 공허한 곳에 불과했다. 어쩌면 화자는 그 현실을 부정하고픈 심정으로 ‘싫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모른다.

 

요즘 의료계에는 이 화자의 심정을 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종주단체이자 의사들의 큰집이었던 대한의사협회를 바라보는 심정이다.

 

의사협회의 지난 100년은 숭고함의 역사였다. 시대적 고난 속에서 의학을 들여왔고, 짧은 시간 비약적 발전을 일궈냈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늘 협회가 있었다.

 

‘이익단체’라는 일차원적 역할을 넘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정부의 든든한 정책 파트너였고, 오늘날 세계가 우러르는 의료시스템 구축에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작금의 의협은 과거 역사와 판이한 모습이다. 전문가 단체의 위상은 사라진지 오래고, 갈수록 심화되는 내홍은 회원들의 민심마저 돌려 세웠다.

 

국회도 정부도 의협의 몰락에 혀를 찼다. 그들에게 의협의 ‘위기론’과 ‘투쟁론’은 존재감을 인정해 달라는 투정에 불과하다.

 

시대적 혹은 환경적 요인을 차치하고라도 이 비참함의 단초를 선거방식 변화에서 찾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회원이 주인인 협회’를 기치로 도입한 ‘회장 직선제’가 오히려 독이 됐다. 기대했던 ‘화합’이 아닌 ‘분열’이 심화됐고, 세력 간 이전투구는 정치판을 방불케 했다.

 

아군과 적군의 정체성이 모호한 내분은 대외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졌고, 그 안타까운 단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9만 의사들의 의지의 대상이자 안식의 고향이던 협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관단체들도 몰락한 종주단체에 냉소를 보낸다.

 

변하지 않으면 작금의 비참함은 그 정도를 더할 수 밖에 없다. 그들만을 위한 직선제 보다 덕망 있는 인물을 추대하는 과거로의 회귀를 진중히 고민해 볼 때다.

 

의료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덕망 높은 인물이 9만 회원들에게 ‘시골 큰집’ 속 사촌형 책상 앞에 붙어 있던 좌우명을 읊어 줄 그 날을 진정 기대한다.

 

“우리는 가난하나 외롭지 않고, 우리는 무력하나 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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