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역설'에 빠진 한국 의료정책
2014.10.05 20:00 댓글쓰기

일반적으로 '규제'는 행동이나 행위를 금지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억제를 통해 규칙 혹은 규율 따위를 따르게 하는 행동으로 자유와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규제'가 곧 '자유'라는 주장도 있다. 규제가 오히려 자유로운 경쟁과 선택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이자 성장과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이라는 '규제의 역설(paradox)'이 그것이다.

 

이는 규제와 자유를 같은 층 위에 두고 규제 아니면 자유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념을 해체해 상호연관성을 살피는 통합적 접근방식이자 논리 전개방식이다.

 

대표적으로 ISO인증을 통해 제품의 질을 담보함으로써 자유로운 거래를 촉진시키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같은 규제의 역설이 널리 활용되는 분야가 보건의료다. 불법적 의료행위나 무분별한 오남용을 규제함으로써 자유로운 경쟁과 의료 질 향상, 환자 삶을 윤택하게 바꿀 수 있는 근간이 된다는 논리가 곳곳에 적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일련의 보건의료 정책은 이 같은 규제의 역설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당국이 제시하는 규제와 역설적 논리는 일견 타당성과 설득력을 갖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2월 시행을 앞둔 스텐트 급여기준 개정고시를 두고 순환기내과와 흉부외과 의사들 간 통합진료를 의무화함으로써 의료 질과 환자 삶이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합진료를 통해 의료진 간 논의와 견제가 이뤄져 자연스레 스텐트의 무분별한 사용이 방지되고, 흉부외과적 기술의 발전과 적정 진료 및 처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적정성평가를 시행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역시 평가를 통한 질 향상을 당연한 공식으로 받아들인다. 평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의료서비스 최소한의 질을 확보하고 환자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민단체 역시 이 주장에 납득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의료가 내포한 공공적 성격과 결부시켜 각종 규제를 강화하고 늘리는데 공감하고 직접 규제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분위기 속에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는 밥그릇 챙기기로 매도 당했고, 이들의 의견은 억압됐으며 제기된 문제들 조차 무시당하거나 소소의 의견으로 치부됐다.

 

의료 질, 환자 삶 향상이라는 대의명분에 부작용이나 문제점이 묻히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규제의 역설은 왜곡되고 편향적으로 적용됐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데보라 슈로더-사울니어(Deborah Schroeder-Saulnier)는 자신의 저서 '패러독스의 힘'에서 역설을 "OR 방식의 사고에서 벗어난 AND 방식의 포괄적 사고"라며 "기존 인식의 틀을 깨고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순환구조로 재구성해 치우침 없이 전체를 조망할 때 선택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모두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진정 보건당국이 규제를 통해 의료 질 확보와 환자 삶의 향상, 더 나아가 의료전달체계의 자유로운 경쟁과 성장, 발전을 이루고자 한다면 기존 인식의 틀을 깨고 규제를 둘러싼 포괄적 사고가 요구된다.

 

그럼 적어도 규제가 곧 자유라며 만들어 놓은 환경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피해와 고통을 당한다며 집단 반발하는 사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