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마취된 사이 수술실에서는…
2015.01.12 08:35 댓글쓰기

병원, 아니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깨졌다. 단지 유명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생일파티를 벌이고 환자 신체에 삽입할 보형물로 장난을 치는 사진들이 발견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초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는 성형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의식불명에 빠졌다. 마취전문의 없이 수술을 집도하던 의사가 보호자 동의 없이 환자를 전신마취하고 병원까지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다.

 

이는 비단 성형외과만의 문제도 아니다. 최근 법원 판결에서는 서울소재 유명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동료의사와 언쟁을 벌이던 집도의가 전신마취를 한 4살 여아를 남겨두고 수술실을 나가버린 사건이 드러났다.

 

수술실은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에 대한 신뢰 하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수술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환자 생명은 오롯이 의료진의 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수술실 습격사건에 의료계가 격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강남 A이비인후과의원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수술 중이던 수술실에 경찰 수사관 등이 난입해 7분 30초간 수술이 중단됐다

 

의료계는 이를 두고 ‘초유의 사태’라며 강력 반발했다. 수술실 난입이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면마취 환자의 수술 중단으로 인한 뇌손상, 외부인 출입으로 인한 감염 및 합병증 발생 위험에 대한 의료계의 공분은 당연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의료계에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식이 없는 환자가 누워있는 수술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고. 수술 중 기다림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보호자는 의료진을 믿고 의지해도 되는 것이냐고 말이다.

 

지난 1년간의 사건들을 돌아보면 국민들은 수술실에 음식물이 반입되는 것은 아닌지, 동의 없이 전신마취가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의료진 개인감정 때문에 수술이 중단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불신은 결코 의료계에도 긍정적이지 않다.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의 진단과 처방을 믿지 않게 된다면 진료권이 위협받을 것이고 이는 결국 환자 상태에도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국회에서는 의료분쟁 급증, 대리수술, 음주수술 등의 불법행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며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여론 역시 환자 알권리, 안전권 보장을 요구하며 해당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일련의 사건들을 단순히 일부 의료진의 의료윤리 부재 탓으로 돌려버려서는 안 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을 초례한 것이 일부 부도덕한 의료진들의 일탈이라 할지라도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의료계 전체에 있다.

 

이미 성형외과학회는 지난 4월 대리의사 및 비면허 의료행위를 차단하겠다는 자정활동을 공포한 바 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이번 사건에도 즉각 "자율정화를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가 불거져 죄송할 따름"이라며 "의사회 윤리위원회 제소 및 의협에 징계를 요청할 것"이라며 사과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2015년 새해에는 특정분야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체가 지난해 쌓인 불신을 털어내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실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해당 병원 징계에 따른 끝이 아닌 전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 강화 등의 시작이 돼야 한다.

 

100% 안전한 수술은 없다. 환자와 보호자 역시 수술에 따른 위험을 이해한다. 다만 이들에게는 의료진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100%의 신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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