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직원은 대거 징계받았지만 장관은 재등극
박대진 기자
2016.01.19 13:25 댓글쓰기

촉한의 재상 제갈량은 병법서인 장원심서(將苑心書)에서 믿을 수 있는 장수의 덕목 중 하나로 '형불택귀(形不擇貴)'를 제시했다.

 

‘형벌을 내림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오늘날 리더십을 논(論)함에 있어 종종 인용된다. 즉 병사들은 공정한 필벌을 내릴 줄 아는 장수를 믿고 따른다는 얘기다.

 

공정한 형벌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차마 이를 시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법 위에 군림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천겁의 세월 전에도 형별의 형평성에 대한 천착이 언급된 것을 미뤄보면 예나 지금이나 그 귀한 분들로 인한 무원칙과 무규칙은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근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사결과를 놓고 설왕설래가 뜨겁다. 감염자 186명, 사망자 38명, 격리자 1만6600명이라는 치욕의 역사는 인재(人災)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전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갔던 메르스 사태는 모두가 예견했듯 보건당국의 초동 조치 실패와 허술한 대응 탓이었다.

 

감사원 역시 이례적으로 단일 사안에 대해 무려 공무원 16명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해임’은 물론 ‘정직’, ‘강등’에 이르기까지 그 수위도 통념을 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감사결과에 대한 여론의 뭇매가 매섭다. 보건당국 실무자들이 대거 처분을 받았지만 정작 총책임자였던 문형표 前 복지부 장관은 징계 대상에서 제외된 탓이다.

 

이를 두고 ‘면죄부 감사’, ‘정략감사’, ‘정실감사’, ‘관치행정’, ‘꼬리 자르기’ 등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메르스와의 패전에서 죽도록 싸운 병사들만 처형하는 꼴이라는 성토도 이어졌다. 감사원이 나서 해명까지 했지만 성난 여론은 쉬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 개입설에 불을 지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감사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로 사임한 문형표 前 장관을 불과 4개월 만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한 것과 맥(脈)을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의 재신임에 누(累)가 되는 감사결과를 내놓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결국 여론의 화살은 형불택귀(形不擇貴)를 이행하지 않은 박 대통령으로 향했다.

 

아름답지 못해 보이는 선택을 한 문형표 前 장관 역시 비난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무리 청와대의 부름이 있었더라도 메르스 사태 총책임자로서 근신을 자청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맹자(孟子)의 고자장(告子章)에는 관직의 출사 조건이 나온다. 군주가 진언(眞言)대로 행하거나 그럴 의지가 있으면 나아가되, 그 뜻이 쇠하면 떠난다고 했다.

 

또 ‘비록 출사자의 진언을 따르지는 못해도 내 땅에서 굶게 할 수는 없다’며 관직을 내릴 경우 받아도 좋다고 했다. 구휼 성격의 가장 비루한 출사 조건인 셈이다.

 

환란의 책임자였던 문형표 前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를 넙죽 받아든 것은 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비는 데는 무쇠도 녹는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청와대의 주인과 구휼의 출사길에 오른 문형표 이사장에게 국민들이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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