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준‧구교윤‧이슬비 기자] “갑작스러운 진료 지연 통보에 당황스럽네요. 평소보다 대기시간도 길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안과가 진료 불가를 안내하며 이날 안구건조증 진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빅5 병원 소속 전공의 다수가 이날 근무를 중단한 가운데, 특히 세브란스병원은 다른 병원보다 하루 앞서 전공의 612명 중 600명이 이탈하며 업무 차질이 즉각 나타났다.
이외 다른 병원들도 외래와 수술 등 일부 진료 일정을 조정하며 진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일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전공의 진료 중단 여파로 안과 외래 진료가 불가하다는 안내문자를 진료예약 환자 등에게 발송했다.
세브란스병원 안과 측은 “전공의 사직으로 일반 진료 진행이 어려워 예약된 일정에 진료가 가능하지 않다”며 “현재 내원 시에도 진료가 불가하므로, 병원 정상 운영시 재예약 요청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실제 안과 접수 데스크에는 ‘현재 전공의 사직 관련으로 진료 지연 및 많은 혼선이 예상된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현재 안과는 특수처치 및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고 고지한 상황이다.
세브란스병원은 빅5 병원 중에서도 가장 먼저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앞서 지난 19일에는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재직 중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현장 따윈 무시한 엉망진창인 정책 덕분에 소아응급의학과 세부전문의 꿈을 미련 없이 접을 수 있게 됐고, 돌아갈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세브란스병원은 ‘비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세브란스병원은 하루 200여건, 일주일에 1600여건의 수술이 이뤄진다. 하지만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부재로 수술을 평소 대비 50% 미만으로 축소했다.
외래에서는 안과 등 일부 진료과의 진료가 차질을 빚는 가운데,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36개월 아기가 폐렴에 걸려 어린이병원을 방문했다는 한 부모는 “의사들의 파업이 크게 체감되지는 않지만 다음 외래 일정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은 된다”고 말했다.
오전에는 다소 조용했던 진료과들도 오후부터 진료 지연으로 인한 퇴원 및 전원하는 환자들이 뒤섞이며 혼잡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현재 전공의 파업 여파로 수술만 절반 정도 줄인 상태고 외래 진료는 차질 없이 정상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는 20일 오전 브리핑에서 “19일 오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점검 결과, 소속 전공의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모두 수리는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을 확인했다”며 “근무지 이탈은 세브란스병원, 성모병원 등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라고 전했다.
서울대‧아산‧삼성‧서울성모병원 '긴장감' 고조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은 20일 오전 기준 일부 전공의들이 근무지를 이탈했으나, 아직은 차분한 분위기다.
서울대병원은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수술 등의 대기가 지연되고 있지만 외래에는 큰 차질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료 지연과 관련한 포스터·안내판 등 안내는 없었으며, 본원과 암병원, 어린이병원은 여느때와 같이 대기자로 가득했다.
다만 환자들 사이에 전공의 근무 중단으로 인한 걱정은 가득했다. 특히 어린이 환자를 동반한 보호자들은 애타는모습으로 안내데스크에 진료 일정 등을 물었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찾은 한 보호자는 “아이 영상검사를 하기 위해 방문했는데 오늘 파업 때문에 가능한지, 얼마나 대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현재 진료과별 진료 지연이나 전공의 공백 등을 세부 조사 중”이라며 “수술만 지연되고 있고 외래 접수는 평소와 같이 접수가 가능하다. 다만 대기가 평소보다 오래 걸릴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9일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업무개시명령 및 면허취소 등의 법적 처분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인단 아미쿠스 메디쿠스에 소속 전공의들의 자문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도 당장 외래와 수술에는 큰 타격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사직서 제출이 시작돼 일부 수술 등 진료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며 “금일 일부 전공의들이 이탈한 상황으로 정확한 규모는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서울아산병원의 다수 외래환자와 입원환자들도 “진료 지연에 대한 안내는 듣지 못했다”며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입원 중인 60대 남성 환자는 “딱히 의사가 부족한지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주변 환자들도 뭔가 지연됐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파업이 지속되면 여파가 예상된다. 서울아산병원 다른 관계자는 “당장의 진료에는 큰 차질 없으나, 지금 외래를 예약할 경우 전공의 부재 여파로 3월 중순 이후에나 진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기 일산에 거주하는 한 환자는 “나는 예정대로 오늘(20일) 입원수속을 밟고 있는 중"이라면서도 "아는 지인은 이달 23일 입원 예정이었는데 지난 주말에 병원으로부터 '다음달 23일에 입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해 불안한 마음으로 왔다”고 전했다.
전북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한 환자는 “진료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 맞냐”고 되물으며 “한 번 올라오기 힘들어서 이번에 꼭 진찰받아야 할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조바심을 냈다.
수술을 며칠 앞두고 입원 중인 환자들 일부도 지난 주말께 수술 연기를 안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성모병원도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근무 중단이 이어지며 응급·중증도에 따라 수술과 입원 일정을 조절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전날인 19일 시행 예정이었던 수술 중 10%가량을 연기한 데 이어, 20일에는 전체 수술 중 30%를 미룰 것으로 보인다.
서울성모병원은 19일까지 290명 중 190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로 수술과 입원 일정 조정에 대한 안내를 준비 중이다.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기존 진료는 교수진이 최대한 소화하고 있으나, 일부 진료는 일정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전공의 근무 중단 규모가 커지거나 오래 지속될 경우 교수들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병원들도 시시각각 확대되는 전공의들의 움직임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통령 중앙사고수습본부 중앙비상진료상황실장은 “여러 병원 상황을 보면 2∼3주 정도는 기존 교수님들과 전임의, 입원전담전문의, 중환자실전담전문의 등 전공의를 제외한 인력으로 큰 차질 없이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비상근무 당직 체계를 짜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이상으로 기간이 길어지면 이분들 피로도가 누적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때는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사 중 필요한 인력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