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거듭할수록 일선 병원들의 인력난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소속 직원들 정년 연장을 도입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병원들 입장에서는 고질적인 채용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사회적 정년 이후에도 계속 근무를 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는 평이다.
특히 ‘의사’라는 특정 직역에서 시작된 정년 연장은 최근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에 이르기까지 전체 직역으로 확산되면서 병원계의 새로운 인사 문화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국내 병원계에서 가장 먼저 ‘정년 연장’을 도입한 곳은 공공병원의 상징인 국립중앙의료원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해 3월 추가적인 의사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현행 60세인 의사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20명 정도 이상의 전문의가 병원을 떠났고, 핵심 진료과 전문의가 대거 유출 사태까지 마주하자 ‘정년 연장’이라는 혁신적 돌파구를 마련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주영수 병원장은 “은퇴 후 진로를 걱정하던 의사들이 지금은 안정적으로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며 “정년 연장 이후 병원 분위기가 한층 개선됐다”고 평했다.
이어 “40대 이하로는 아직 현실감이 없을 수 있지만 50대만 해도 크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긍정적인 효과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경북 안동의료재단 안동병원이 단일 의료법인 최초로 전직원 정년을 만 70세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강신홍 이사장이 장기근속자들의 업무 지식과 가치 등을 고려해 제안한 제도는 ‘정년 이후 계속 근무제’였다.
‘정년 이후 계속 근무제’는 법적 정년인 만 60세 이후에도 신청자에 한해 근무 평가와 건강검진 결과를 토대로 근무기한을 연장하는 제도다.
장기근속자들의 업무 지식과 조직융화도 등의 미래가치를 적극 고려한 방안이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심사는 건강 및 업무수행에 대한 최소 요건을 확인하는 수준으로, 직책이나 업무, 부서변경 등에 합의하면 최초 3년 계약 이후 1년 단위로 심사를 거쳐 만 70세까지 재계약이 이뤄진다.
무엇보다 의사 등 특정 대상이 아닌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파격이라는 평가다. 안동병원은 현재 1800여 병상 규모에 2000여 명의 임직원이 종사하고 있다.
강신홍 이사장은 “정년 이후 계속 근무제로 임직원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경제활동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직장생활을 통한 정서적 안정감을 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병원-직원 상호 만족감 상승
계속근무제 등 형식도 다양
政, 장려금 지급 등 제도 확산 독려
병원계 정년 연장이 공공과 민간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직원들이 직접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 유공자 진료를 담당하는 중앙보훈병원 전문의들은 지난해 연말 정부에 의사 정년 65세 연장을 요구했다.
타 병원 대비 낮은 임금 등의 영향으로 전문의들이 대거 이탈하며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을 통해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같은 공공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의 정년 연장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주무부처인 국가보훈부는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계 정년 연장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병원은 임금피크제 등을 통해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고, 직원들은 고용안정에 대한 만족감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도 정년 연장을 적극 독려하는 분위기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최근 ‘1000만 노인 시대’를 대비해 정년 연장·폐지를 공식 제안했다.
이를 위해 정년 이후 계속 고용제도를 도입한 사업주를 지원하는 ‘계속고용장려금’을 확대 지급하자고 정부에 요청했다
일본의 경우 일찍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할 정년연장장려금과 고령자고용장려금, 계속고용장려금 등의 각종 보조금 제도를 실시 중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기업이 상황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했다. 60세 이상 근로자에 대해 사업주가 △65세로 정년 연장 △계속고용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약 70%가 ‘계속고용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나머지 30%의 기업은 자발적으로 ‘정년 연장이나 폐지’를 선택했다.
한 종합병원 원장은 “정년 연장은 병원에 안정감을 준다”며 “제도권에서도 지원책 마련 등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향후 병원계에 새로운 인사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