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이 한 대학에 카데바 부족을 지적했는데 '3D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내년에 진짜 의대 교육이 제대로 안 되겠구나 싶었다."
의대생 학부모 단체인 전국의대생학부모연합(이하 전의학연) 황나연 부대표는 최근 대학들과 진행한 면담 내용을 전하며 이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전의학연은 금년 2월 의정갈등이 촉발된 직후 결성돼 의대생들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쳤다.
특히 교육부와 의대를 운영하는 대학들과 직접 접촉하는 한편,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을 비롯해 광화문 정부청사,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등지에서 집회를 직접 개최했다.
지난 16일에는 충북대병원·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충북의대 학생회와 함께 충북대 대학본부 앞에 의대 교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근조화환을 설치하고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만남을 회피했고, 대학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황 부대표는 "대학들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취지로 '밤에라도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하지만, 학생들은 무슨 죄가 있어 야밤에 공부를 해야 하는 건가"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올해 1학년과 내년 신입생이 같이 교육받았을 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어떤 대학도 대답해주지 않고 있다"며 "기존에도 기자재가 모자랐던 상황에서 내년 수업이 시작되면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면서 학생들의 학업 공백 문제도 커지고 있다. 남학생들은 군복무를 이행하려는 학생들이 다수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황 부대표는 "의대생들 현역병 신청이 몰리면서 지금 신청해도 내년 10월에나 입대할 수 있다. 빠르게 입대할 수 있는 동반 입대조차 내년 3월도 힘들다"고 실상을 전했다.
실제 지난 9월 말 기준 전국 37개 의대에서 올해 군 휴학을 신청한 학생은 총 105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1~2023년 평균 138.7명의 7.6배에 이른다.
황 부대표는 "요즘 예과 1‧2학년 의대생들 사이에서는 '군대 됐냐'가 인사말"이라며 "우리나라 국방 측면으로 봤을 때 학생들이 군의관으로 가지 않아서 손해고, 의대생들 개인적으로도 1~2년씩 지연되면서 손실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신입생과 함께 교육받을 시 문제 해결 문의, 답변 대학 무(無)"
"계엄 포고령에 학부모들, 우리 아이들이 처단되나 생각들면서 각성"
"부모 역할 넘어 시민단체로서 의대생들 공부하고 지원해야겠다는 고민"
"대학도 '교육부 지침 내려오면 고민해보겠다'는 식으로 뉘앙스 변화 감지"
정부‧대학 측의 미지근한 대응과 의정갈등 장기화로 학부모들이 지쳐갈 때쯤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황 부대표는 "계엄 포고령을 본 순간 우리 아이들이 처단당할 수 있는 존재였구나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며 "아이들이 정말 앞으로 쭉 '노예생활'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학부모들이 다시금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의정갈등이 막 벌어졌을 때는 의대생들을 지지할 사람이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에 전의학연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면, 이제는 부모 역할을 떠나 하나의 시민단체로서 공부하고 이들을 지원해야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 별개의 조사도 기획하고 있고, 의대 증원 무효화 관련 소송의 쟁점 사항에 관한 자료들도 취합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들 반응도 계엄 사태를 전후해 미묘하게 달라졌다.
황 부대표는 "계엄 사태 전에는 대학들이 '못한다', '어렵다'는 답변을 가장 많이 했는데, 이제는 '교육부에서 지침이 내려오면 고민해보겠다'는 식으로 뉘앙스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상황이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학생협회는 지난 11월 총회를 열고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를 포함한 8대 요구안을 관철하고자 내년에도 투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전의학연은 의대생들을 지지하는 한편 독자적 행보를 펼쳐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황 부대표는 "2025학번 신입생 학부모들이 전의학연에 가입하고 있는데 내년 상황이 불확실하니 마찬가지로 고민이 많은 것 같다"면서 "학부모들은 일단 학생들 개개인의 결정을 존중해주자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수시모집에서 정시로 이월하는 인원을 줄이고, 정시 모집에서도 일부 감원을 해 어떻게라도 내년에 수업을 할 수 있게끔 대학 측이 도와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