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 남극에 있지만 의대생·전공의 적극 응원"
김시림 남극 장보고기지 의료대원
2025.01.09 06:21 댓글쓰기

2025년 '을사년'(乙巳年)은 지혜와 풍요, 변화를 상징하는 '푸른 뱀'의 해다. 새로운 변화를 찾아 한국을 떠나 오지에서 의술을 펼치고 있는 젊은 의료대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넓고 추운 펭귄의 고향, 남극에서 과학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과 기술자들 건강을 보살피고 있는 김시림 의료대원(33세)이 주인공이다. 현재 남극 장보고기지에서 12차 의료대원으로 파견돼 활동 중인 그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남극에서 의사로서 새로운 삶과 도전, 희망찬 새해 포부 등을 들어봤다.[편집자주] 


Q. 간단한 자기소개

남극 장보고기지 12차 의료대원으로 파견 온 김시림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고신대 의대를 졸업한 후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다. 장보고기지에서 생활한지 두 달이 다 돼 간다. 


Q. 남극기지 지원 계기는

이전에 노르웨이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의 적막한 설원에서 홀로 오로라를 바라봤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때 느꼈던 고요함과 경이로움이 마음 속에 또렷하게 남아, 언젠가 극지방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장보고기지 의료대원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으며 운좋게 선발됐다. 또한 사소하게는 낯선 환경 속에서 저 스스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제가 몰랐던 제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표도 있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극한의 환경에서 제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도 남극에 오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Q. 현재 남극기지에서 맡은 일은

기지 내 체류인원들의 건강관리와 일차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극지 과학연구를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지에 머문다. 연중 기지에 상주하며 연구와 기지 유지 보수를 맡고 있는 월동대 18인, 하계기간(보통 10월부터 3월까지) 동안 야외 연구 및 다양한 활동을 위해 방문하는 하계대, 그리고 기지 주위 시설 공사팀과 헬기 운송팀까지 합치면 최대 80명 정도 인원이 체류하고 있다. 이 기간 기지 체류 인원 건강상담과 진료, 진찰 및 처치를 책임지고 있다. 또한 월동대 대원으로써 기지 내 공동생활을 위한 활동을 다른 대원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


"행동하는 비전은 세상 변화시키는 동인(動因)"

"진료 업무와 약 처방 및 포장 등 병원 업무 전반 관리"

"장보고기지 대원들 건강한 상태로 한국 복귀 위한 적극 의료지원"

"남극기지, 과학연구 발전 기여 및 의사로서 자아 성찰 공간"


Q. 기지에서 하루 일과 궁금

평일의 경우 오전 7시에 기상, 조식을 먹은 후 단체 회의에 참석한다. 회의에서는 그날의 날씨 상황과 야외활동 및 연구지원 계획을 공유하며, 기지 운영 상황을 점검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의료실에서 진료 업무와 약 처방, 약 포장, 약품 관리, 비품 정리, 기구 소독, 물리치료기 관리 등 병원의 기본적인 운영을 담당한다. 환자가 발생한다면 근무 외 시간에도 진료한다. 근무가 어렵고 힘든 것은 아니나 한국에서 당연시 여기던 부분까지 챙기다보니,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근무를 마치면 저녁식사 후 운동을 하거나 독서, 악기 연주 등 자기 시간을 갖는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병원 업무를 잠시 쉬지만,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병원을 찾듯 기지 내 체류하는 분들이 주말에 병원을 찾는 일이 있어 종종 근무한다. 하지만 계속 병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주위 이탈리아 기지 등을 방문해 그곳 의사들과 의료 관련 이야기를 하고, 환자 발생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의견을 나누고 자문도 구한다.


Q. 극지방에서는 어떤 질환을 주로 보는지

남극은 춥고 건조하기 때문에 대원들은 주로 근골격계 통증이나 피부과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 작업 및 연구활동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나 손상에 대한 상담 및 치료를 많이 한다. 진료 외 연구활동 지원도 가능하다. 헬기를 타고 다른 지역에 조사를 가서 펭귄을 보거나 스쿠아, 해표 등의 조사활동도 하고 있다. 


Q. 머무는 동안 계획이 있다면

올해 12월까지 월동 업무를 지속할 예정이다. 이 기간 가장 중요한 목표는 월동하는 17인 대원들을 건강했던 상태 그대로 한국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다듬는 시간을 갖고 싶다. 틈틈이 외국어 공부도 하고 독서 및 취미생활을 통해 자기성찰 기회를 갖고 있다. 남극에서의 경험이 제 삶에 잘 스며들길 기대한다.


Q.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갔다. 새해 동료 의사들에게 인사를 하면

우선, 지난해 연말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사고의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갑작스런 비극은 모두에게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며, 그 무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료진이 아닌 한 사람으로써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낀다.

작년 한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특히 정부의 의료농단 사태와 졸속한 정책추진 과정에서 전국 의대생, 전공의, 그리고 의료진들 혼란이 가중되며 많은 이들을 무기력과 좌절감에 빠뜨렸다. 대한민국 정부가 혼란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금,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한 불안감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무기력함을 마주하는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이 기억난다. ‘행동하지 않는 비전은 그저 꿈에 불과하고, 비전없는 행동은 그저 시간만 보내는 것이다. 행동하는 비전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꿈만 꾸며 시간만 보내고 있는 제게, 뜻을 갖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많은 선후배, 동료 선생님들의 모습은 스스로를 반성하게도 하고, 앞으로 의료계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의 귀감이 되기도 한다. 뜻이 있는 사람의 행동은 그에 합당한 결과로 귀결되리라 믿고 응원한다. 비록 지금은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먼 타국에서나마 많은 의대생, 전공의, 의료진과 그 가족분들께 새해, 언제나 평온한 날들이 가득하길 지구 끝에서 소망한다.


Q. 의료대원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저는 다른 선생님들에 비하면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할 수 있고, 기지생활을 한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 말씀드리면, 남극 기지는 단순하게 일상을 떠나 새로운 환경을 경험한다라기보단, 의사라는 정체성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된다. 익숙했던 대학이나 병원의 환경, 시스템이라는 보호막 없이 가장 본질적인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이 순간들이 쉽진 않지만, 지나고 나면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극지에 관심이 있다면, 단순한 경험이나 낭만적인 장소로 생각하기보단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대한민국 과학연구활동에 기여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료인 사명감도 있지만, 스스로를 오롯하게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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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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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용구 01.09 21:03
    김시림  화이팅
  • 차둥 01.09 12:51
    정말 멋진 일을 하시는 군요!! 업무 잘 마무리하시고 무사히 귀환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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