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병캉스 잘하고 갑니다”…환자 칭찬에 보람
이순연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PE파트장
2026.09.07 08:46 댓글쓰기

[특별기고] 진료는 잘 받았지만 설명은 어렵고, 기다림은 길고, 소통은 부족했던 경험. 아마 누구나 병원에서 한두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2017년부터 환자 경험 평가를 도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병원 경쟁력은 환자가 치료를 ‘잘’ 받았는지가 아니라, 병원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로 판가름 나는 시대가 됐다. 


의료 패러다임도 ‘진단과 치료 중심’에서 ‘환자 경험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사망률 및 합병증, 재원일수 같은 지표만으로 의료 질(質)을 평가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환자가 병원에서 얼마나 존중받는다고 느끼는지가 병원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은 1차부터 5차까지 이어진 환자경험 평가에서 한 번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우상향하는 성과를 냈다.


5차 결과가 발표된 뒤 다른 병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하나였다. ‘왜 동산병원만 그런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나?’


사실 병원이 할 수 있는 환자경험 향상 활동은 여러 현실적 상황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병원마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좋은 성적을 받아온 이유를, 전국 최고 성적을 얻은 트로피에 비유해 세 가지로 풀어보고자 한다.


트로피 받침대, 설립 이념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시초는 127년전 서양 선교사들이 대구 지역에 복음과 근대의료를 전하기 위해 ‘제중원’이라는 작은 초가집에서 진료를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그리스도 ‘사랑과 섬김의 정신’이라는 설립 철학은 지난 127년간 병원 운영의 근간이 됐다.


이런 철학이 조직 내부의 가치로만 머물지 않도록, 매년 평균 70여 차수 직원 교육과 신규직원 교육을 통해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 재해석하고 전(全) 직원이 실천하도록 만들었다.


‘사랑’ 정신은 환자의상황에 공감하고 감정을 존중하는 소통 방식으로, ‘섬김’ 정신은 환자에게 묻기 전에 먼저 다가가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활동으로, 의료기관으로서 지역사회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 정신은 환자와 보호자가 신뢰할 수 있는 병원 환경 조성으로 각각 구체화했다.


트로피 몸통, 충성고객 확보 전략


본원은 환자 경험 향상 활동의 목적을 단순히 만족도를 높이는 데 두지 않고, ‘다시 찾고 싶은 병원’, ‘주변에 추천하고 싶은 병원’이 되는 데 두었다.


이를 위해 매년 외부 전문 교육업체와 협력해 부서장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환자 경험 워크숍을 열고, 환자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개발한 ‘빙그레케어’를 통해 체계적이고 통일된 응대로 환자 요구에 대응했다. 또한 상시 환자 경험 평가를 통한 실시간 VOC(고객의 소리) 관리로 환자 불편을 즉시 해결했다.


기억에 남는 사례도 있다. 한 소아 환자 보호자가 병원 시설은 넓고 쾌적한데 수유실이 단 하나뿐이라 불편하다는 의견을 남긴 적이 있다. 이를 반영해 외래에 수유실을 추가로 열었더니, 다음 만족도 조사에서 그 보호자로부터 ‘내 이야기를 이렇게 빨리 반영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지난 5차 상시 환자 경험 평가에서도 “전반적으로 다 좋았다, 올여름은 호캉스가 아닌 병캉스 잘하고 간다”는 VOC가 다수 접수됐다. 병원 생활을 편안하게 만들려는 개선 방향이 실제 환자들 경험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무척 뿌듯했다.


간호부에서는 ‘환자 경험 평가 TFT’를 구성, 고령이거나 중증도가 높아 모바일 평가에서는 들을 수 없는 현장 목소리에 직접 귀 기울였다. 소음 예방을 위한 귀마개 제공 등 환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개선 활동도 이어갔다.


이렇게 주차 직원과 만나는 병원 첫 순간부터 퇴원 후 받는 안부 문자까지, 환자 입장에서 병원의 ‘처음과 끝’을 다시 설계한 결과 환자 경험 지수와 NPS(순수 추천 고객 지수)가 모두 상승했다.


트로피 컵, 조직문화 내재화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은 ‘환자 경험 향상’을 일회성 QI 과제가 아니라 병원 전반 핵심 가치로 정립했다. 경영진 리더십을 통해 관련 지표를 병원 KPI에 포함시켜 경영 목표로 반영했고 간호사, 검사, 원무, 보안, 미화 등 전(全) 직군이 참여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직원 교육으로 내재화했다.


특히 5차 평가에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방법을 몰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질환에 대한 위로와 공감’을 개선하고자 ‘I Love 동산킹’이라는 위로·공감 집중 케어 매뉴얼 83종을 개발했다.


직원 교육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평가가 있으니 더 친절하게 설명하라’는 압박이 아니었다. 원활한 의사소통과 체계적인 응대 매뉴얼로 반복 설명을 줄여, 결국 환자 경험 활동이 본인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있었다.


동산병원이 그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철학과 경험, 문화라는 세 가지를 전략적으로 연결한 덕분이다. PE(환자 경험) 파트가 한 일이 있다면, 직원들이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들이 밖으로 드러나 빛날 수 있도록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손잡이 역할을 한 것뿐이다.


“현장에서 구현된 것들 작은 성과들”


이러한 전략은 병원 곳곳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


입원 직후 위로받고 안심할 수 있도록 침상에 비치한 ‘침상웰컴 카드’와 ‘청소완료 팻말’, 불편하거나 궁금한 점을 언제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든 ‘불만 제기 카드 스티커’와 간호사실 ‘담당간호사 명패’, 가장 기다리는 의사와의 만남 시간을 미리 알려주는 ‘회진 알림톡’, 가장 위로가 필요한 순간인 수술 상황을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알림톡’ 서비스,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려운 각종 동의서를 쉽고 효율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한 ‘ASIC’ 개발 등이 그 예다. 


부서별로 환자경험 요소를 하나씩 실천하자는 취지로 만든 배지를 달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병원 브랜드임을 인식하게 한 ‘배지 온 브랜드 업! Day’ 행사, ‘빙그레케어 페스티벌 UCC 공모전’을 통해 각자 위치에서 즐기며 참여할 수 있는 행사, 분기별 환자 경험 캠페인 등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환자경험평가 전국 1위와 ‘희망 사항’


환자 경험 향상 활동은 점수를 올리기 위한 평가용 활동이 돼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는 순간 더 이상 환자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환자 경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의료진과 환자 사이 의사 소통’이라 할 수 있다. 관건은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의료진 생각을 환자 눈높이에 맞춰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있다. 그만큼 어렵고, 평가는 더 힘겹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 속에서, 병마로 지치고 불안해하는 환자를 위해, 또는 옆에서 힘들어하는 동료를 위해 잠시 멈추어 눈을 맞추고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부디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이 순간 세상 어떤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 수고로움이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너무 치열하게만 애쓰지 말고, 가끔은 그 역할을 즐겁게 수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부 역시 환자 중심 병원 문화 확립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이 지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 주기를 바란다.


서열 중심 평가가 아닌 등급으로만 대국민 공개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야만 의료진들이 본연의 가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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