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질환 치료가 병원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방과 응급 대응, 치료·재활을 거쳐 환자가 지역사회로 복귀할 때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만드는 게 국립정신의료기관 역할입니다.”
시영화 국립나주병원장 직무대리는 국립나주병원의 역할을 ‘호남권 공공정신의료 안전망’으로 정의했다.
중증·응급 정신질환자 치료뿐 아니라 노인 정신건강, 퇴원 환자 사례관리, 의료취약지역 지원과 재난 트라우마 대응까지 공공의료의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구상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연결’이다. 정신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도록 경찰·소방과 병원을 연결하고, 퇴원한 환자가 치료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병원과 가정을 잇는다.
소록도병원처럼 의료기관이 부족한 농어촌과 섬 지역에는 전문인력이 직접 찾아간다.
25년 현장서 확인한 ‘치료 이후 삶’
그가 국립나주병원 변화를 설명하는 데는 오랜 현장 경험이 배어 있다. 전남의대를 졸업한 시영화 원장 직무대리는 1997년 국립나주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시작한 뒤 2001년 정식 임용돼 25년 넘게 병원을 지켜왔다.
그동안 노인정신과, 정신재활치료과, 정신건강과를 거쳐 의료부장과 병원장 직무대리까지 맡았다. 환자의 급성기 증상 치료부터 퇴원 후 지역사회 복귀 지원까지 두루 경험했다.
특히 노인 정신건강과 정신재활 현장에서 쌓은 경험은 ‘치료 이후의 삶’에 주목하게 된 배경이다.
증상이 호전돼도 돌봄과 일자리, 주거, 지역사회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환자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영화 직무대리는 “국립나주병원은 정신질환 예방과 진료, 정신재활뿐 아니라 전문인력 교육·훈련과 조사·연구, 지역사회 정신건강사업을 수행하는 통합지원기관으로 변화해왔다”고 전했다.
그 역시 진료와 병원 운영에만 머물지 않고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회복지향 재활, 지역사회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를 이어왔다.
이러한 문제 의식과 경험은 현재 국립나주병원이 추진하는 정신응급 대응과 찾아가는 사례관리, 재난 심리지원 사업의 토대가 됐다.
경찰·소방과 연결된 24시간 정신응급 안전망
국립나주병원은 24시간 원스톱 응급입원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정신응급환자가 신속하게 치료를 받도록 지원하고, 입원은 물론 퇴원 후 사례관리, 지역사회 복귀까지 연계한다.
경찰·소방·지방자치단체·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력한 대응체계도 구축했다. 2022년부터 전남경찰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경찰관 2인 1조로 구성된 ‘응급입원 현장지원팀’을 병원에 상주시켰다.
10개 응급병상과 전문의 당직체계, 24시간 응급입원 상담 서비스도 운영한다. 복잡한 내부 절차를 간소화한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정신응급환자가 적기에 평가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시 직무대리는 “호남권 정신응급환자가 필요한 시점에 평가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 관계기관과 연계한 24시간 안전망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나주병원은 2025년부터 보건복지부 급성기 집중치료병원으로 지정돼 정신응급 및 급성기 치료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급성기 치료가 끝난 환자에게는 바리스타 자격 취득 등 직업·정신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입원 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절차조력서비스도 시행한다.
의사가 퇴원 환자 집으로…재입원율 64% 감소
국립나주병원이 특히 역점을 두는 분야는 퇴원 후 사례관리다. 의사와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 구성된 사례관리팀이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치료 지속과 지역사회 복귀를 지원한다.
국내 최초로 도입한 ‘찾아가는 사례관리 전담의사제’는 가정에서 전문 상담부터 투약·주사 처치까지 제공하는 환자 중심 맞춤형 의료서비스다.
그는 “연구를 통해 해당 제도가 재입원율을 64%나 줄이는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며 “환자 치료에 머물지 않고 생활 현장까지 찾아가는 게 공공정신의료의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노인 정신건강 분야에서도 지역 밀착형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노년기에는 신체질환과 사회적 고립, 일상생활 기능 저하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병원 진료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립나주병원은 의료취약지역과 노인복지관을 정신건강전문요원이 방문해 상담과 치료 연계를 지원한다. 노인돌봄 종사자에게는 교육을 제공하고 정신건강 캠페인도 운영한다.
시 직무대리는 “노인 정신건강 서비스를 병원 안의 진료에 한정하지 않고 어르신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진 없는 섬부터 재난 현장까지
국립나주병원의 전문인력과 진료 역량은 병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무의도서 주민을 대상으로 운항하는 병원선에 의사와 정신건강전문요원을 지원해 주민 상담과 치료 연계를 돕고 있다.
장흥·곡성 등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마음건강주치의·자문의 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파견한다.
이 같은 활동 저변에는 개별 국립병원이 보유한 전문성을 서로 연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시 직무대리는 과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열린 정신건강 향상 세미나에도 강연자로 참여해 정신건강 문제 조기 발견과 개입, 국공립기관 간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록도처럼 의료적·사회적 돌봄이 함께 필요한 현장부터 병원선이 닿는 섬 지역까지, 필요한 곳에 전문인력을 연결하는 게 국립병원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재난 정신건강 지원도 국립나주병원의 주요 기능이다. 병원은 호남권트라우마센터를 중심으로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에 전문인력을 파견하고 심리 회복을 지원한다.
12·29 여객기 참사 당시에는 64개 기관과 재난 심리지원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국립나주병원 소속 전문의 등 전문인력 222명을 무안공항 현장에 투입해 심리지원을 제공했으며, 현재도 유가족을 대상으로 중장기 트라우마 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시 직무대리는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으로 직접 나가 국민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것 역시 국립정신의료기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호남권역 내 치료가 완결되는 체계 필요”
호남권 정신의료 인프라의 지역 격차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히 정신과적 위기와 신체질환이 함께 발생한 환자는 정신건강 평가와 신체질환 치료가 동시에 필요하지만, 이를 한 기관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자해나 약물중독, 외상, 급성 신체질환을 동반한 정신응급환자는 신체질환 치료와 정신과적 평가가 동시에 필요하다.
하지만 호남권에는 두 영역을 함께 담당할 기관이 제한적이어서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거나 필요한 치료가 지연될 수 있다.
그는 “전남은 지역이 넓고 농어촌이 많아 야간이나 휴일에 정신응급환자가 치료받을 기관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호남권에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 기능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립정신병원과 권역 대학병원 간 협력을 제도화하고 역할과 수용 기준, 이송·전원 절차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현장 대응과 신체질환 치료, 정신과적 집중치료, 퇴원 후 사례관리까지 호남권 안에서 이어지는 지역 완결형 정신응급체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설파했다.
시 직무대리는 국립나주병원 미래상으로 치료와 재활, 위기 대응, 지역사회 연계를 하나로 잇는 병원을 제시했다.
그는 “민간에서 충분히 담당하기 어려운 정신응급 및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중독, 재난 트라우마 분야를 책임지는 중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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