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2000년 국내 한약학과 1기 졸업생이 배출됐습니다. 20년이 다 되도록 한약학과 설립의 대전제였던 한방 의약분업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방치되고 있는 한약사들의 고충은 한계에 다다른 상황입이다. 2020년에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실시와 함께 최근 연구용역을 마친 한약제제분업 논의 착수 등 제도권 진입과 관련한 굵직한 이슈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정책의 사생아’라 불리는 한약사 제도를 바로잡을 절호의 시기입니다. 이번에야 말로 정부가 책임감을 보여야 합니다.”
대한한약사회(이하 한약사회) 회장선거에 단독후보로 출마했던 김광모 대한한약사회 회장[사진]은 90%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됐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출마의 변으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한방 의약분업을 할 수 없다면 실패한 제도란 걸 선언하고 한약사 제도를 폐지하라고 보건복지부에 요구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단독후보로 출마했던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이른 회원들이 김 회장 이야기에 강하게 공감했다는 설명이다.
한약사 제도는 1993년 한약분쟁 이후 양방과 마찬가지 형태의 한방 의약분업을 전제로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신설됐다. 이에 따라 한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이 모두 설치된 종합대학의 약학대학 내에 한약학과가 설치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한약사 면허자는 2549명이다. 그러나 한방 의약분업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약사들은 제도의 실효성에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미완성된 제도 하에서 현재 한약사들은 정부가 지정한 100종류의 처방 내에서만 한약을 조제하며 한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2만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 한약처방 숫자에 턱없이 못미친다.
김 회장은 “1기 졸업생들이 졸업한지 15년이 지나도록 분업은 이뤄지지 않았고 회원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자체가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 한약사회 회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성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약사들 입장에선 복지부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제도를 방치하고 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며 “직역 간 이해문제가 있다는 변명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방 의약분업의 문제점 중 하나는 한약의 특성에 있다. 성분이 규격화된 양의학과는 달리 한의학에서는 한약재 선별에서 가공 및 조제 전 과정에 걸쳐 조제인의 ‘노하우’가 특히나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에 한의사들은 ‘한약은 양의학에서의 약보다 치료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똑같은 방식의 의약분업은 무리가 있다’고 얘기해왔다.
최혁용 한의협 회장은 지난 9월 열린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최종안과 관련해 “약사와 한약사에 대한 실질적 배제방안을 담아 10월 중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의사와 한약사의 입장차가 뚜렷한 상황에서 복지부는 ‘한방 의약분업은 어려운 문제’라고 말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양한방 특성이 다르고 현재 한의사들이 하고 있는 진료의 형태가 있는 만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중국과 일본도 완전분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안 될 이유가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김 회장은 “중국의 경우 중의사와 중약사 제도 분리를 통해 완전한 분업이 이뤄졌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의사가 한약과 한약제제 처방을 하고 약사가 약을 조제하는 식”이라며 “전통의학을 도입한 이웃 나라에서도 완전 분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약학과 설립 전제였던 한방 의약분업 난망"
"한약도 조제 전문가가 해야 하고 시범사업 통해 규격화 실현"
이어 내년 실시가 예정된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계기로 한방 분업에 대한 이같은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국민건강보험 적용에 있어 분업은 안전성과 유효성만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며 “의약품을 처방과 조제를 한 사람이 하게 된다면 처방과 조제 수익도 그 사람이 전부 가져가게 되는데, 아무래도 과잉처방의 사례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며, 한방 분업을 통한 각 직능간 투명한 역할정립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의사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존중하고 또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환영하고 최선의 모델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한 직능에 치우친 정책이 시행되는 것은 경계돼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마지막으로 현재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안전성, 유효성 관리에 대해선 “원외탕전실의 비전문 인력 조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회장은 “한약재 안전성을 h-GMP를 통해 보장하겠단 이야기는 백분타당하고 그렇게 돼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이렇게 인증된 한약재를 사용한 조제 과정의 안전성과 유효성 확보 논의는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한약을 조제하는 원외탕전실의 인력관리 문제가 제기됐다.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의약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99개 원외탕전실 중 현재 인증을 받은 곳은 단 7개소에 불과하고 1명의 한약사가 2825개의 원외탕전실 이용기관(의료기관)을 담당하고 있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김 회장은 “비전문 인력의 한약 조제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라며 “예를 들어 갈근탕 처방이 있으면, 뚜껑을 열고 두 시간동안 달이냐, 뚜껑을 막고 달이냐 여부에서 유효성분이 날아가는 비율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결국 한약의 확실한 효능을 위해선 조제전문가가 조제를 해야 하고, 시범사업 과정에서 해야 할 것은 이에 대한 규격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