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한의사와 의사는 물론 약사, 한약사까지 보건의약계 직능 갈등이 첨예한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의 정부안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에서 열린 첩약급여화협의체 3차 회의에서 시범사업 정부안을 공개했다.
올 하반기부터 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작하는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은 총 3단계로 진행된다.
참여 기관은 한의원과 약사 및 한약사가 근무하는 약국이다. 정부안은 첩약 급여적용시 약국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시범사업 실시 1년 후 경과를 살피고 한의원과 약국 간 청구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대상 질환은 5개 내외가 될 전망이다. ▲알러지비염(소아) ▲생리통 및 갱년기장애(여성) ▲관절염 및 중풍(뇌혈관질환 후유증관리(노인) 외 우울·불안·화병·안면신경마비와 같은 전생애 질환이 후보로 제시됐다.
수가는 첩약 처방 및 조제행위를 변증·방제, 조제·탕전, 약재비로 구분했다.
변증방제 기술료는 한의사 인건비와 검사비가 포함된다. 조제 탕전료는 한의사와 한약사가 조제탕전을 하는데 소요되는 인건비와 한약재 관리비용 등 관리비용이다. 한의원 혹은 약국 이용 여부에 따라 별도 수가가 적용된다. 약재비는 질환별로 상한액을 설정해 범위 내 실거래가가 적용된다.
환자 부담률은 50% 선이다. 처방일수는 연간 최대 10일이며 초진에만 해당한다.
2012년과 달리 복지부 제도 실행 의지 확고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은 앞서 지난 2012년 추진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상정됐으나 한의계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일부 한의사들은 ‘급여화 과정에서 한약 조제권을 가진 약사들의 영역이 한의사 영역을 침범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일원화된 수가 책정이 한의사 나름의 조제방식 발전을 저해시킨다고도 비판했다.
한의계 내분은 시행을 불과 한 달 여 앞두고서도 봉합되지 못하였고 사업은 결국 뒤엎어졌다.
이번 시범사업 또한 당시의 직능갈등이 재연되는 모습이다. 의료계 비판은 물론 의사·한의사약사·한약사 간 입장차도 아직 첨예하다.
이번에 공개된 정부안은 이같은 전례를 알고 있는 복지부의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논란이 됐던 2000억원대 규모의 예산을 4 분의 1수준으로 줄이고, 직능갈등의 주된 쟁점이었던 약국 참여여부를 명시하면서도 단계적 검토란 단서를 달았다. 대상질환은 당시 노인·여성 관련 대표상병에서 소아와 생애질환에까지 확대했다.
실제로 복지부 추진 의지도 매우 확고하다.
2012년 당시 시범사업을 주도했던 장재혁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관은 “원래 이 시범사업은 이해관계자 협의를 전제로 추진하는 것으로, 한의사협회 내부는 물론이고 약사회 등 관련 단체 간 협의가 안 되면 당연히 백지화된다”고 밝혔다.
반면 이창준 한의약정책관은 직능별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조율할 수 있다"며 추진 강행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정부안이 공개되면서 갈등 양상은 다시금 불거지는 모습이다.
전국의사총연합은 500억원이 투입된다는 정부안 내용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시범사업을 철회시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한약사회도 지난 16일 열린 3차 협의체 회의 직후 “한의사 주도 시범사업이 되는 모양새”란 입장을 표했다.
약사와 한의사 역시 이번 정부안에 긍정적인 입장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한의사들은 약국이 배제된 ‘한의사 주도 첩약 급여화’를 주장해왔고, 협의체 관계자에 따르면 약사들 또한 회의적 입장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2012년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논의에 참가했던 한 한의사는 “첩약 시범사업을 둘러싼 직능갈등은 십여년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중재역할을 하는 복지부의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2012년과는 달리 복지부 추진의지가 확고하고, 한약 소비형태도 변화된 만큼 직능갈등의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