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수첩] 최근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정부 방안이 공개됐다. 한의원과 약국을 대상으로 소아·여성·노인 관련 5개 질환에 첩약 급여화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예산은 3년 동안 500억원을 투입된다.
한의사·약사·한약사 각 직능대표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는 앞서 합의된 시범사업을 도출하고자 지난해 4월 첫 회의를 가졌지만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회전만 거듭했다.
당초 지난해 말 실될 예정이었던 시범사업이 올해로 넘어오면서 복지부는 결국 정부안을 내놨다.
사업비는 다소 축소된 500억원으로 책정하고, 약국 참여를 명확히 했다. 대상질환도 소아, 여성, 노인 등 특정 환자군 뿐만 아니라 전생애질환으로 확대했다. 첩약 급여화를 둘러싼 각 단체 주장을 최대한 반영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각 직능 반응은 차갑다.
정부안이 알려진 직후 대한약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졸속행정”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약사회 또한 "진단 수가가 한약제 처방을 위한 진료수가의 몇 배에 달하게 설정됐다"며 시범사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의사회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진 않았지만 약국 대상으로 진행되는 시범사업에 일부 회원들은 불만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여화 시범사업에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던 의료계 반발도 여전하다.
첩약 급여화는 앞서 지난 2012년 대대적으로 추진되다 막판에 뒤엎어진 전력이 있다. 한의계 내·외부의 입장차 때문이었다.
당시 시범사업은 실시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무산됐다. 시범사업 실시를 목전에 두고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8년 전과 지금 상황은 유사하다.
그때와 다른 점은 복지부 의지다. 지난 2012년 사업 추진 당시 복지부는 "첩약 급여화 사업은 이해관계자 간 협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을 시 사업은 백지화될 것"이라고 입장을 단호히 했다.
반면 이번에는 "이해단체 갈등은 오래된 것으로, 꾸준한 논의를 통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며 사업 추진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러나 문제의 ‘직역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의지의 변화만으로 성공적인 시범사업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나온다.
국고에서 비용이 마련되는 급여화는 민감한 문제다. ‘국민적 합의’는 필수다. 자칫하면 보장성 확대라는 취지가 특정 직능의 이익을 위해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의료계 반대 속에 추진되는 한의약 육성 정책은 이런 측면에서 더욱 위태롭다. 하물며 의사뿐만 아니라 약사, 그리고 한의계 내부적으로도 조율되지 않은 상태로 추진되는 사업에 ‘국민적 합의’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2020년 시행을 앞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이유는 2012년과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사업 내용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예를 들어 이번 정부안에는 시범사업 참여 대상으로 약국이 명시됐다. 그러나 확실한 한방 의약분업을 전제로 시범사업 추진을 기대했던 한약사회는 ‘시범사업 1년 후 단계적 추진’이라는 단서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20년이 넘게 방치된 한약사 제도를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약국을 우선 참여대상으로 정했지만, 시범사업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한의사들은 반대로 ‘약사와 한약사가 시범사업에 들어온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다. 동일한 계획에 대해서도 직역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모습이다.
각 직역 입장을 골고루 반영하려던 정부안이 오히려 불만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협의체 관계자는 “각 직능이 대립하는 쟁점들에 대해 정부가 확실한 입장을 밝히고 이에 대한 설득까지 하는 게 협의체 기능인데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점이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 다른 한의계 인사는 “이해단체 입장차를 조율해야 하는 복지부 고충도 이해하지만 기간에 비해 협의체가 활발히 열리지 않는 등 시범사업 준비기간 동안 안일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첩약 급여화는 한의계의 오랜 숙원이다. 한의사는 한의약 제도권 진입의 핵심사업으로 여기고 있으며, 한약사는 방치됐던 한약사 제도가 개선될 수 있는 시발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첫 번째 이어 두 번째 시범사업이 좋은 결과물을 낳지 못하면 언제 다시 논의가 재개될지 모른다. 이번 시범사업에 대한 관계자들의 어깨는 예전보다 훨씬 무겁다.
복지부가 공언한 사업 시행까지는 아직 1년 여의 시간이 남아 있다. 비록 건정심 상정은 코 앞이지만 약간의 시간은 있다.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복지부에게는 과거와 다른 '신의 한 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