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납업체’ 폐해 개선을 골자로 하는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 목소리가 공론화된 지 오래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약사법 수준으로 의료기기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방향성이 설정됐지만 아직까지 간납업체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된 합의조차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주최로 지난 18일 열린 ‘의료기기 유통질서 확립을 위한 좌담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구매대행 놓고 엇갈린 시각
의료기기업계는 국내에 미국의 병원구매대행사(GPO)와 같은 역할을 하는 간납업체는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GPO의 목적이 대량 직접 구매를 전제로 협상해 병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것인데, 한국은 중간에서 계약을 대행하고 세금계산서만 발행할 뿐 실체적인 서비스 없이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간납업체 개선 TFT 전영철 부위원장은 “간납업체는 계산서 발행 주체만을 바꿔 수수료를 요구하고, 수치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며 “미국은 법적으로 3% 이상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추가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에만 수수료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직접 구매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금 결제가 지연돼 업체가 손실을 떠안아야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간납업체 개선 TFT 박재형 위원은 “간납업체를 통해야 납품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단가계약이 성사되지 않아도 제품을 공급할 수 밖에 없고, 높은 할인율을 요구하며 계약을 미뤄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GPO 업체인 이지메디컴은 국내 역시 구매 전문성을 바탕으로 병원, 공급사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지메디컴 이주한 컨설팅사업부장은 “컨설팅 능력 여부가 ‘악덕 간납사’와 선진화된 GPO를 가르는 기준”이라며 “ICT 기술 기반으로 수요 파악에서부터 예산, 구매, 발주, 납품, 정산 등 전 과정이 투명하게 오픈돼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수수료 문제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이주한 컨설팅사업부장은 “작년 거래규모가 8000억원이었는데 영업 이익은 30억원 수준이다. 이것이 구매대행사의 현실”이라며 “수수료는 관리원가 측면에서 구매 및 물류 대행 업무에 대한 대가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기기 업계가 요구하는 표준 수수료율을 계약서에 작성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거래 규모, 개별 특성에 맞게 협상해서 정할 문제지 이를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의료기기법, 약사법에 비해 부실” 제기
간납업체와 GPO의 차이와 역할에 대해서도 업계의 의견이 분분한 만큼 정부 차원의 정확한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법무법인 정진 노성식 고문은 “미국 GPO의 경우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고 통행세 조항도 신설됐다”며 “업계의 고충은 무엇이고 이해당사자인 병원의 입장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미약품은 2007년 이후 규제 강화와 법 집행으로 리베이트에 갈 돈을 R&D에 투자한 결과 지금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의료기기 산업 역시 유통 구조 개선 노력을 기울인다면 선진화가 가능할 것”이고 덧붙였다.
약사법에 비해 미미한 의료기기법 보완의 시급성도 지적됐다.
약사법 47조 4항은 도매상과 의료기관·약국 간의 거래를 특수 관계인이 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거래 대금도 6개월 이내에 지급하고, 기간 초과 시 연 20% 범위 내에서 연체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또한 의약품 관리 종합정보센터에 공급내역을 보고하도록 해 리베이트 지급 안전장치를 마련해 뒀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산업지원단 박순만 단장은 "약사법에는 판매 질서 확립에 관한 조항이 있는데 의료기기법에는 없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공정거래 가이드라인이나 표준계약서 등이 제시된다면 의료기기 유통 구조 개선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