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숙경 기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일본은 150년 전부터 과학기술 인재를 발굴했다. 신식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생들을 전 세계 곳곳에 보냈다.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1901년 제1회 노벨생리의학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자는 세균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였다. 그해 노벨상은 기타사토의 공동연구자였던 독일인 에밀 아돌프 폰 베링이 ‘디프테리아(급성 호흡기 감염병의 일종)에 대한 혈청 요법 연구’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한국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기생충학, 병리학, 미생물·바이러스학 등을 다루는 기초의학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세계 유수의 나라와 어깨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한국 의학은 압축 성장을 했지만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현장에서는 작금의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 탄식하는 답답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압축 성장 뒤 기초의학 그늘 깊어져
기초의학협의회 최명식 회장(서울의대)은 6월30일 개최된 기초의학학술대회에서 데일리메디와 만나 "우리나라 의학계는 단기간에 괄목할만한 양적, 질적 성장을 이뤘다"며 "의사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국내 임상의학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에 도약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기초의학에 대한 교육과 연구,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탓에 이 분야에서의 발전을 모색하고 성장을 꿈꾸기에는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초연구 의학자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무엇보다 부족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할 당시에는 낭만적인 생각을 했다. 선배들도 꽤 기초의학에 지원했고 그들이 기초의학 역사를 써 내려가며 발전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체감도가 너무도 크다. 그는 "예컨대, 미생물학의 경우만 보더라도 10명 중 5명만 의과대학 출신"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 현장에서 몸소 느낀 바가 있었다. 최 회장은 "비단 학생들이 사명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교육, 연구뿐만 아니라 높은 장벽으로 인해 해당 교수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이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임상에서 의료기술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가 이뤄진다.
그래서일까. 인턴, 레지던트 때 분명히 술기를 익힐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의대 교육과정에서도 ‘술기’를 익히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최 회장은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자. 한글을 깨우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 국어를 배우듯이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다. 임상의학도 기초의학이 기반이 돼야 한다. 그것이 순서다. 기초가 다져지지 않고서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다룰 수 있나"라고 호소했다.
"기초의학 전공자 활동 폭 좁고 경제적으로 보상 등 적은 것도 원인"
기초의학 전공자가 활동할 곳이 넓지 않다는 점에서도 아쉬움의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의사기초의학을 제외한 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미생물학, 생화학, 기생충학 등은 '전문의제도'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해당 과목의 경우 수련을 통해 전문의가 되고 싶어도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임상의학으로 돌아서는 경우도 다반사다.
최 회장은 "기초의학 영역들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기초의학 전문가들이 실제 활동할 영역은 너무 협소하다"고 토로했다.
"대한민국 의학교육 기틀 붕괴 우려"
문제는 기초의학 기피 현상은 의사인력 수급 불균형을 넘어서 의학 교육의 기틀 마련을 불가능케 한다는 데 있다.
최 회장은 “기초의학은 학부에서 임상의학을 공부하는데 바탕이 되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의학 이해에 필요한 기본 과학 원리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기초의학이 발달해야 한국만의 의학이 발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 정부 차원에서 공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인 일본의 사례를 모델로 삼아야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최명식 회장은 "생명과학 연구와 임상의학 간 중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초의학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이 분야 전공자가 의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어 "전문의들이 기초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제반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초연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