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의사 국가시험에 기초의학 과목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의료계 내에서도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현실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인숙 의원(자유한국당)이 주최하고 대한기초의학협의회가 주관한 ‘기초의학 의사국가시험 도입 무엇이 쟁점인가’ 토론회에서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기초의학교실 오세옥 교수는 “진료역량뿐만 아니라 의과학 역량 등 의사로서 갖춰야 할 다양한 역량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시대에 과학적 원리와 근거를 잘 모른다면 의사는 퇴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초의학에 대한 평가는 일부 선진국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대생은 총 3단계 평가를 받게 되는데 2학년 후에는 기초의학을, 4학년이 되면 임상의학 시험을 본다. 인턴 1년 수련 후에야 면허를 획득하고 개업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시험을 친다.
독일도 4학기 이후에는 구두 및 필기시험을 통해 물리학과 생물학, 의학사회학 등 기초의학 지식 평가를 받으며 10학기 이후 임상과목 필기시험을 본다. 이후 2학기의 임상실습을 거쳐 3차 의사고시를 치르게 된다.
오 교수는 “부산의대의 경우 육안해부학-발생학-조직학-생리학-병리학-약리학-내과-외과의 과정을 거쳐 학생들이 기초의학을 차례대로 익힐 수 있도록 치열한 논의를 통해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있지만 현재 해부학을 제외한 기초의학 실습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임상강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의가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기초의학 비중은 끊임없이 줄어 왔다. 의사국시에도 나오지 않는데 왜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느냐는 것”이라며 “이대로라면 임상의학에 필수적인 기초의과학 원리와 개념에 대한 이해를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정부 추진에는 부담, 의료계 내부 입장 정리 중요"
반면 기초의학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이를 시험이라는 형태로 제도화하는 것이 효율적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기초의학교실 이덕주 교수는 “기초의학 역량을 평가하면서도 학생과 교수, 대학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으려면 본과 1~2학년 수료 후 응시 횟수에는 제한을 두지 않고 합격/불합격만으로 평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시험 주관기관에 대한 행정적 부담을 비롯해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기에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고, 교수 입장에서는 임상교육의 상대적인 축소를 우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한 “대학에 따라서는 일부 교과 과정 개편이나 시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걱정할 수 있으며 학문적 접근보다 시험에 맞춘 학원식 교육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이동재 회장도 “기초의학 중요성이 강조되고 이것이 교육 과정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시험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국가시험은 의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역량을 확인하는 것으로, 기초의학 평가를 넣게 될 경우 최신지견 반영이 쉽지 않으며 오히려 시험 대비 위주의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100만원에 달하는 국가시험 응시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기초의학 포함으로 인한 부담 또한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도 학생들 입장을 좀 더 고려해줄 것을 주문했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곽순헌 과장은 “기초의학을 시험에 도입하는 것에 있어 아직 의료계 내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므로 이를 정부가 먼저 나서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현실적으로는 기초의학 관련 항목 비중을 높이는 방향 등으로 적용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합의가 돼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복지부에서 인턴제 폐지를 논의했을 당시 그 해 수능시험을 치른 학생들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기준을 정했듯이, 혹 기초의학으로 인한 시험 정책 변동이 있더라도 실제 영향을 받게 되는 학생들 입장을 고려해 시기를 조정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