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오는 2020년 4주기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를 앞두고 벌써부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 3주기 평가에서 탈락한 울산대학교병원이 ‘진료권역’ 재설정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번 평가의 최대 화두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지역 간 의료 형평성을 위해 도입된 상급종합병원 진료권역이 오히려 불평등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한 상황이다. 특히 다른 병원 대비 높은 점수를 받고도 평가에서 탈락하는 사태가 속출하면서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 역시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급종합병원 진료권역에 얽힌 그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의미 달라진 진료권역 흑(黑)역사
상급종합병원 지정에 가장 중차대한 기준인 진료권역의 역사는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지역 간 균형적 의료 발전을 도모하고 환자들이 대도시 지역 의료기관에만 편중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료보험제도 초기부터 진료권제도를 시행했다.
환자가 의료보험으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분만, 응급, 기타 부득이 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의료보험증에 표시된 중진료권 내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했다.
가족 간호를 받기 위해 부득이 다른 진료권에서 진료를 받고자 하는 경우에도 보험자로부터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의료보험 혜택을 부여했다.
당시 진료권은 시·군별로 구분된 138개의 중진료권과 8개의 대진료권으로 편성됐다. 지금의 상급종합병원 격인 3차 진료기관은 25곳이 지정됐다.
보건복지부는 이 제도가 환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1998년 전격 폐지를 결정했다.
다른 진료권에 있는 유명 의료기관을 이용하려 해도 사전에 환자가 속한 중진료권내에 있는 의료기관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야 하는 등의 불만이 커지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1999년에는 3차 진료기관이 ‘종합전문요양기관’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됐고,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9개 진료권역으로 재편됐다.
환자의 진료권 장벽은 허물어진 만큼 종합전문요양기관 지정을 위한 지역 구분 성격이었다. 현행 10개 진료권역으로 바뀐 것은 2008년이었다. 단순한 행정구역 중심의 구분이 아닌 환자의 실제 의료기관 이용행태를 반영한 진료권역 설정이었다.
2011년부터는 ‘종합전문요양기관’이란 명칭을 ‘상급종합병원’으로 바꾸고 현행과 같은 진료권역과 지정기준을 통해 의료전달체계 최상위 기관들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진료권역 재설정 연구결과 파문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위한 진료권역이 2011년 이후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면서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진료권역은 △서울권 △경기 서북부권 △경기 남부권 △강원권 △충북권 △충남권 △전북권 △전남권 △경북권 △경남권 등 10개로 나뉘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광범위한 진료권역으로 인해 대도시 중심의 상급종합병원 지정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경북권역의 경우 3기 지정기관 5개소 모두 대구에 몰려 있다. 전남권역 역시 3개소 중 2개소가 광주, 경남권역은 6개소 중 4개소가 부산에 집중돼 있다.
서울에는 전체 상급종합병원 42곳 중 13곳이 몰려 있는 등 진료권역을 구분하고 있으나 권역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지역 불균형 문제가 심화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에 공감한 보건복지부는 서울대학교 산합협력단에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체계 개선 연구’를 의뢰했고, 해당 연구용역 결과가 공개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연구 책임자인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진료권역 기준을 인구 100만명, 지역 환자수 40% 이상, 이동거리 120분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가령 경남권역을 부산, 울산, 경남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10개이던 진료권역이 19개, 혹은 22개로 늘어나게 된다. 그에 따라 상급종합병원 수도 자동적으로 확대되는 모형이다.
연구진 제안대로라면 4주기 상급종합병원 수는 최소 46개에서 최대 53개까지 늘어난다.
하지만 방식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상급종합병원 구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만큼 3차병원 자격을 수성하려는 곳과 신규 지정을 노리는 기관 모두 예민하게 반응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복지부는 일단 4주기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에서는 해당 연구결과를 반영하지 않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워낙 파격적인 제안인 만큼 병원계에 미칠 파장을 감안해 당장 적용하기 보다 제5차 상급종합병원 지정 시점에서 재논의키로 했다.
다만 일부 진료권역 개편 가능성은 열어두면서 최종 지정기준 마련까지 적잖은 진통을 예고했다.
진료권역 목숨 걸 수 밖에 없는 구조
병원들이 왜 이처럼 진료권역에 민감해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급종합병원 선정 방식을 들여다 봐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받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한 병원들의 경우 대부분 절대평가를 무난히 통과한다. 경쟁은 이 때부터 시작된다.
복지부는 이들 병원을 심사해 순위를 정한 후 1~2단계의 지역경쟁과 3단계의 전국 경쟁을 거쳐 최종 상급종합병원을 선정한다. 1, 2단계 모두 진료권역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기서 ‘소요 병상수’와 ‘자체 충족률’ 개념을 알아야 한다. 소요 병상수는 말 그대로 해당 권역에서 필요한 병상수를 의미한다.
자체 충족률은 해당 진료권역 병원에서 해당 지역 환자들을 수용하는 비율이다. 지난 3주기 평가 당시 자체충족률은 78.9%였다.
우선 1단계에서는 진료권역별로 소요 병상수에 자체 충족률을 적용한 결과로 선정된다.
지난 평가를 기준으로 서울권역 소요 병상수 1만3380개의 자체충족률인 78.9%인 1만557병상이 주어진다. 그럼 해당 진료권역에서 점수가 높은 병원 순으로 ‘합격’을 받는 구조다.
서울의 경우 통상적으로 1단계에서 빅5 병원들의 몫으로 끝난다. 경쟁이 없는 충북권이나 강원권 역시 무혈입성이 가능하다. 1단계에서는 대략 20곳 정도가 추려진다.
2단계 역시 진료권역별 경쟁이다. 1단계 선정 후 소요병상수가 많이 남은 진료권역 순으로 추가 배정된다.
마지막 3단계는 전국경쟁이다. 2단계까지 진행한 후 발생한 잔여 병상을 놓고 진료권역에 상관없이 점수가 높은 기관 순으로 정하게 된다.
결국 어느 진료권역에 속해 있느냐가 상급종합병원의 생사 여탈을 달리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구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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