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하우젠 박사와 자궁경부암 백신
2008.10.30 01:47 댓글쓰기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독일의 해랄드 주르 하우젠 박사에게 주어졌다. 그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 (Human papillomavirus, HPV)를 처음 발견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

그의 업적은 “당시의 정설을 뒤집었다 (Went against current dogma)”는 평을 훈장으로 달았다. 그 이유는 그가 처음 인유두종바이러스를 자궁경부암 조직으로부터 분리해냄으로써 인유두종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의 원인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1980년대 초에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헤르페스 (Herpes) 바이러스가 더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세포내에 존재하는 소량의 바이러스 입자를 분리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에 처음으로 발바닥 피부에 생기는 사마귀로부터 인유두종바이러스의 DNA를 추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같은 사마귀라도 성기 사마귀에서 추출된 DNA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인유두종바이러스가 동일한 한 가지 유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생각대로 지금까지 최소한 100가지 이상의 다른 유형이 발견되었다. 1983년 그의 연구소의 학생이었던 마티아스 뒤르스트가 자궁경부암 발생에 가장 중요한 인유두종바이러스 16형을 클로닝하였고, 자궁경부암 조직의 63%에서 발견된다고 보고하였다. 이어서 그 연구소에서 자궁경부암 원인중 16형 다음으로 흔한 18형을 분리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 자궁경부암의 가장 많은 원인으로 알려진 16형과 18형 모두가 하우젠 박사 팀에 의해서 처음으로 분리되고 보고되었다.

인유두종바이러스는 전체 염기가 약 8,000개 정도로 이루어진 두 가닥의 원형 DNA 바이러스로서 인간에게만 감염을 일으킨다. 100여가지 이상의 유형이 밝혀져 있으며 계속 새로운 유형이 보고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피부 사마귀의 원인이 되지만 이중 40여가지는 항문과 생식기에 감염을 일으키고 그 중 15가지 정도는 자궁경부암, 질암, 외음부암, 음경암, 항문암과 같은 암을 유발한다. 이러한 암 유발 바이러스를 고위험군이라고 분류하는데 자궁경부암은 거의 100% 고위험군 인유두종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며 그 중에서도 하우젠 박사 등이 발견한 16형과 18형이 70% 이상에서 원인이 된다.

인유두종바이러스 감염은 주로 20대에 많이 되지만 성생활을 하는 여성은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감염 위험이 있다. 실제 50%-80%의 여성이 일생 동안 한 번은 인유두종바이러스에 감염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유두종바이러스 감염은 자연 소멸되지만 일부 여성에서는 바이러스 감염이 지속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상 세포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켜서 점차 암세포로 바꾸어간다고 알려져 있다. 자궁경부암은 주로 40대에 잘 생기므로 바이러스 감염 후 암이 발생하기 까지는 대체로 10-1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며 이러한 기간 동안 많은 유전자 변이가 축적되어 자궁경부암이 발생한다고 추정된다.

자궁경부암은 전세계적으로 50만 명 정도가 발생하며 이중 27만 명 정도가 사망하는 무서운 암이다. 우리나라도 매년 4,000 명 이상의 여성이 새롭게 이 암으로 진단받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기 진단이었다. 그러나 최근 많은 학자들의 연구 끝에 드디어 16형, 18형 인유두종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만들어 졌다.

이 백신은 바이러스 유사 입자 (virus like particle, VLP) 라고 하는 바이러스의 껍질 단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의 바이러스 유전자는 없는 구조이다. 여기에 면역성을 높이기 위한 항원보강제가 첨가되어 있다. 이 백신은 최근 세계적인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하여 이미 100%에 가까운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자궁경부암을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인유두종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의 원인이라는 하우젠 박사의 연구 결과 발표 후 20 여년이 걸린 것이다.

현재 매스컴에서 소개되고 있는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은 실제로는 인유두종바이러스 예방 백신으로서 가다실(머크사)과 써바릭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 두 가지 백신이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승인이 되어 각 병의원에서 접종되고 있다.

두 백신 모두 3회 접종을 하였을 경우 16형과 18형에 의한 자궁경부암은 물론 자궁경부암의 전단계인 자궁경부상피내종양도 거의 100% 예방할 수 있다. 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의 접종 대상 연령은 9-26세의 여성들이며 가능하면 성접촉이 시작되기 전에 맞는 것이 좋다. 대한부인종양학회에서는 한국 여성의 첫 성경험 연령을 고려하여 15~17 세를 최적 접종 연령으로 권장하였다. 한편 26-55세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백신의 임상 연구 결과를 보면 10대 여성에 비하여 면역성과 효과는 조금 감소하지만 충분한 예방 효과가 기대되므로 26세 이상의 여성이라 하더라도 위험인자, 성경험 여부 등에 관하여 의사와 상의후 접종할 수 있다.

현재 이 백신의 효과는 임상 시험 결과 5-6년 정도까지는 지속됨이 확인되었지만, 아직까지 충분한 시간이 경과되지 않아서 그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하여서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추후 연구 결과에 따라 추가 접종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도 있다. 또한 16형과 18형의 인유두종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할 수 있으며 다른 유형에도 일부 교차 예방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자궁경부암과 관련된 모든 인유두종 바이러스 유형의 감염을 예방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백신 접종을 받은 여성도 정기적인 자궁경부암 검진은 필요하다.

하우젠 박사의 감염과 암과의 관계에 대한 열정과 지속적인 관심 덕택에 자궁경부암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이용하여 백신이 개발되었다. 이 백신과 검진을 통하여 우리나라 여성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여성들이 하루 빨리 자궁경부암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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