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병원 숨통 터 줄 특단의 대책을…
2008.11.30 08:39 댓글쓰기
며칠전 여의도 63빙딩에서 열린 제24차 병원관리종합학술대회에서 최소한 앞으로 중소병원 37%가 간판을 내릴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음이 나왔다.최근 가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병원의 대형화경쟁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 말이 어느정도 실체에 접근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한 주장을 한 당사자가 현재 병원 전문 컨설팅업체 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전체 병원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병원의 붕괴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얼마전에는 지난 한해에만 중소병원의 8%가 휴업했거나 폐업을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병원을 끌고 나갈 수 있을지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계적인 경제불황의 여파로 국내 경제 역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으니 중소병원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병원의 대형화와 다병원화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 관과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대형 병원의 무분별한 몸집불리기와 분원 설립 움직임이 블랙홀로 작용해 중소병원을 파멸의 길로 몰아 넣을 것이라고 예견해 왔다.

안타깝게도 이같은 우려가 현실로 다가 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소병원은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덩치가 큰 대형병원들은 경쟁적으로 몸집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 대형병원일수록 앞다투어 분원을 설립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KTX가 생기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교통 접근성이 좋아지자 지방 환자들이 대거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이탈하면서 지방 병원들도 뒤질세라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지방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들은 서로 지역 거점병원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하고 경쟁력이 뒤질 수 밖에 없는 중소병원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 버린채 벼랑 끝으로 내 몰리고 있다.

최근 의료시장이 개방되고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 등 의료계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살아 남기 위한 병원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서비스의 질을 높여서 고객 만족을 높이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최첨단 의료기술과 막대한 자본력을 두루 갖춘 대형병원이 경쟁력을 독점함으로써 초래 될 병폐와 부작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점이다. 대형병원의 대형화 경쟁을 마냥지켜만 보고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형병원 위주의 의료체계는 필연적으로 의료비 상승을 가져 올 뿐더러 의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해 위화감을 조성하고 불화와 불신의 골을 만들게 마련이다.이 시점에서 당국이 해야 할 일은 각급 의료기관의 균형 있는 발전을 통해 제 위치에서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이다.

기술력을 갖춘 대형병원도 물론 필요하지만 중소병원은 중소병원대로, 그리고 의원은 의원대로 존립 의의와 존재 가치가 분명히 있다.

왜곡될대로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속에서 1차·2차· 3차 의료기관간 무한 경쟁이 지속되면 결국 공멸의 길을 걷게 된다.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 결국 1차 의료기관과 중소병원은 설 땅이 없다.

의료서비스는 공공재이다. 따라서 의료기관의 설립 주체가 누구든 공익기관의 성격을 띤다. 의료기관들이 이전투구식 경쟁을 해서는 안된다.

물론 중소병원도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과 제도적인 뒷받침만을 바라보고 있을 게 아니라 혁신경영과 투명경영을 통해 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우수한 인력과 기술을 개발하려는 자구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차제에 유능한 인력 활용 차원에서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간 의료인력 교류방안도 마련됐으면 좋겠다.

관계 당국은 늦긴했지만 지금이라도 의료기관간 기능과 역할 분담을 통해 상호 보완하고 협동하는 자세를 갖고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정책적인 뒷받침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 하루 빨리 의료전달체계를 합리적으로 복원시켜야 길이 보인다.

어차피 대형병원만으로는 의료수요를 감당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것이 현실이라면, 기존 의료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고사 위기에 놓인 중소병원의 숨통을 터 줄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기대한다.
허춘웅 원장 명지성모병원 기자 (webmaster@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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