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싸이를 박재상으로 부르는 이유
권은중 차장(한겨레신문 경제부 금융팀)
2012.10.19 12:25 댓글쓰기

 

본명 박재상 나이 35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와 말춤으로 한국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아이튠 랭크 1위에 올랐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20개국 아이튠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가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빌보드차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마디로 세계적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의 싸이 관련 기사에는 대부분 이처럼 친절하게도 그의 본명이 등장한다. 물론 국내 삼촌팬은 물론 아시아에 많은 팬을 거느린 소녀시대 윤아에 대한 기사에서 윤아(본명 임윤아·22)란 문구가 등장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000년 데뷔한 이후 싸이에 대해서 우리 언론의 시각은 이처럼 이중적이다. 언론이 우리 사회 대중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대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싸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은 약간은 삐딱한 셈이다.


물론 싸이 대마초를 피고 병역비리 의혹으로 군대를 2번 갔다온 다소 특이한 경력의 가수라는 점에서 이런 곱지않은 시각이 형성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싸이가 이런 차가운 시선을 받아온 것은 그가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 싶다.


싸이의 얼굴과 몸매는 한국의 주류 문화코드와 완전히 벗어나 있다. 케이팝은 소녀시대처럼 늘씬하고 예쁜 걸그룹이나 슈퍼주니어 비스트처럼 잘 생기고 멋진 남성그룹이 주류다. 못생긴 얼굴 때문에 그의 데뷔는 불발될 뻔 했다.


싸이가 서울방송(SBS) <힐링캠프>라는 대담 프로그램에서 밝힌 데뷔 뒷이야기는 처절하다. 여기서부터 나는 주류 언론들과 비슷하게 그를 박재상이라고 부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를 박재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류 언론과 전혀 다른 이유다.


박재상은 1990년대 말 미국에 유학하던 시절 당시 유행하던 컴퓨터 통신 나우누리에 자작곡을 올렸다. 그 노래를 들은 우리나라 기획사 담당자가 미국에 있는 그에게 연락을 했고 그는 미국에서 즉각 귀국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본 기획사 대표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싸이가 있는 앞에서 담당자에게 “얘 어떻게 할꺼야”라고 물어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박재상은 데뷔를 했냐고? 그는 <힐링캠프>와 <고쇼>(일명 고현정 쇼)에 나와서 그는 “기획사의 회식에 빠지지 않고 따라가서 자기가 놀던 대로 화끈하게 놀았더니 사장과 기획사사람들이 나에게 반해서 데뷔를 시켜줬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고쇼>에서 그는 그의 막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그의 막춤 실력이 궁금하면 고쇼 다시보기를 권한다.). 그다운 해결 방법이었다.


그가 데뷔했을 때가 기억나는데 그의 별명은 ‘순돌이’였다. 순돌이는 당시 문화방송(MBC)의 일요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 나왔던 임채무-윤미라 부부 집 반지하에 세들어 살던 임현식과 박원숙 부부의 아들 이름이다. 이건주라고 지금은 잊혀진 아역이 맡았던 순돌이는 뚱뚱하고 못생기고 그리고 좀 모자란 캐릭터였다.


‘가요계의 순돌이’가 들고나온 코드는 엽기였다. 겨드랑이털이 보이는 흰색 민소매옷(이른바 나시)에 빨간 바지를 입고 막춤을 추면서 랩을 불렀다. 지금까지 일부 생계형 트로트 가수들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자학적인 분장을 한 가수가 최신 음악인 힙합 장르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는 예명으로 ‘미친놈’이란 뜻의 ‘사이코패스’의 줄임말인 ‘싸이’로 선택했다. 그의 첫 앨범명은 <싸이 프롬 더 싸이코 월드>였다. 앨범에는 ‘아이 러브 섹스’란 민망한 제목의 노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엽기는 시장에서 통했다.


박재상이 이처럼 엽기를 선택한 것은 못생긴 것 이상한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일종의 타협안일지도 모른다. 싸이는 싼티와 엽기를 자기의 특징으로 내세웠다. 약점을 강점으로 돌린 것이다.


박재상은 2001년 인터뷰에서 “싸이는 발랄하고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선택한 이름”이라고 말했다. 싸이코란 단어에서 발랄한 에너지를 느꼈다니? 일반인들에게 박재상은 엽기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박재상은 기성세대나 주류가 금기시하는 B급문화에 푹 빠져 살았다. 일명 나이트클럽 죽돌이였다. 그와 나이트에서 함께 놀던 동네 선배 가운데 청담동 호루라기로 알려지면서 연예인으로 데뷔한 인물도 있었다. 그가 엽기를 택한 것은 가정환경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박재상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생긴 것과 다르게 반포중-세화고라는 8학군 부잣집 아들이었다. 하지만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반도체 제조장비를 만드는 상장기업의 대표이사다. 아버지는 월남한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를 이어받았다. 싸이는 아버지에 이어 그 회사를 이어받을 장남이었다.


박재상은 그런데 그게 싫었다고 한다. 나이트클럽 죽돌이였던 박재상은 아버지에게는 명문인 보스턴대 경영학과를 유학을 가겠다고 말하고 유학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고색창연한 미국 도시 보스턴에서 입학한 곳은 버클리음대였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의 유학자금 송금도 끊어버렸을 정도로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박재상은 아랑곳없이 노래를 불렀다. 당시 미국에는 힙합이 유행했고 싸이는 자연스럽게 힙합을 작곡하게 됐다.


박재상은 한마디로 기획사가 작심하고 만들어낸 잘 생기고 미끈한 상품이 아니라 1990년대 하위문화를 탐닉하던 청년이었다.


그의 막춤과 재담은 누군가 만들어 준 대본에 적혀 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녹아 있던 살아 꿈틀거리는 날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았던 그는 노래뿐 아니라 인터뷰마저도 유쾌하고 감동적이다. 유머와 위트를 높게 평가하는 미국에서 그가 더욱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박재상을 그저 춤이나 잘 추고 사람이나 웃기는 뮤직비디오형 가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지난해 전국 소극장 순회 콘서트를 했다. 27회 전회 매진이었다. 이는 잠실실내체육관이나 올림픽체조공원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던 아이돌 콘서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최근 그의 콘서트를 취재했던 후배 기자의 말로는 콘서트가 진행되는 3시간30분은 광란을 넘어선 감동 그 자체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앵무새처럼 영혼도 없는 가사를 립싱크로 틀어대는 아이돌과 달리 작사 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다. 박재상이 잘 생긴 만능엔터테이너인 이승기에게 준 노래 ‘너라고 부를께’는 이승기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다. 그가 작사 작곡한 노래 ‘낙원’은 심지어 가난한 연인의 애뜻한 사랑이 저절로 그려지기도 한다.


정작 박재상은 세계적인 인기에 얼떨떨하다는 표정이다. 그는 최근 서울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기는 한류를 이끄는 후배들에게 잘한다고 술을 사주는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큰 인기를 얻어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겸손이 아니라 아마 실제로 그가 느끼는 솔직한 마음같다. 그냥 자기가 좋아 깝치고 뛰고 울고 웃는데 그걸 세계가 알아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아직 박재상을 제대로 평가하는지는 않는 것 같다. 아직도 자신의 이름 뒤에 ‘(본명 박재상·35)’이란 삐딱한 꼬리표가 붙은 것이 하나의 증거인 듯 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박재상을 미끈한 백조들 사이에 있는 뚱뚱하고 튀는 ‘싸이코 오리’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싸이코 오리가 세계적 인기를 얻는 것에 신기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박재상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눈 먼 오리 사이에서 날아오른 뚱뚱한 백조다. 부모의 잣대나 사회의 시선으로 인생을 재고 사람을 판단하는 게 대세인 요즘 세상에서는 그는 참 보기 드문 멋진 날개를 가진 백조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를 가수 싸이가 아니라 인간 박재상으로 부르고 싶다. 

 

*박재상은 언론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나이트클럽 죽돌이였다고 한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