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삶의 질을 최대한 회복시키는 치료'
김희상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경희의대)
2012.12.02 20:00 댓글쓰기

의사는 의학의 전문가로서 인체와 질병을 연구, 진단, 치료하는 직종으로, 법으로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면허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 환자를 진료 및 치료할 때 생길 수 있는 심각한 부작용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그만큼 사람의 몸과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는 26개의 전문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문의는 의과대학 또는 의학전문대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수련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등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11년의 교육 및 수련을 받고,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질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전체 의사 중 전문의 비율은 현저히 높아 개선의 필요성이 주장되고 있으며, 실제로 일반의의 비율이 절반 이상인 유럽이나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동네 의원도 대부분 전문의가 진료하고 있는 특이한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구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환자들의 대부분은 각 질환에 대해 전문성을 가진 전문의에게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에는 외과, 안과 및 산부인과 등에서 제공하는 수술 진료가 있으며, 내과 및 소아과 등에서 제공하는 비수술적 전문 진료도 있다. 또한 질병이나 선천적 결함으로 인해 가지고 있는 장애를 최소화하고 최대한의 기능 회복을 이끌어내는 전문 재활치료가 있다.

 

수술이나 비수술적 전문 진료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접할 기회가 많이 있겠지만 전문적인 재활치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소한 사람이 많은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제공되는 재활치료는 주로 재활의학과 전문의에 의해서 진단된 질환 및 장애에 대해서 의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및 사회복지사 등이 팀을 이루어서 환자를 돌보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재활이라는 분야가 환자의 전반적인 삶의 질과 정신적 상태, 그리고 주변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치료진이 참여해야 하며, 이를 지도하고 감독할 수 있는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필요한 것이다.

 

의사가 전반적인 재활에 대한 이해 없이 기계를 이용한 물리치료를 처방하고 재활치료를 시행하는 것은 환자의 삶의 질을 최대한 개선해야 하는 재활치료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로 4년 또는 6년의 의학 교육을 받은 일반의사의 경우 열치료, 냉치료 및 저주파전기치료와 같은 기본 물리치료만을 처방할 수 있다. 그리고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6개 과에서는 견인치료, 운동치료와 같은 단순 물리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이보다 더 전반적이고 깊이 있는 재활치료라고 할 수 있는 전문 재활치료는 4년간의 재활의학과 수련과정을 마친 재활의학과 전문의만 처방할 수 있다. 이에 속하는 중추신경계발달재활치료, 작업치료, 기능적전기자극치료 및 연하치료 등은 앞서 말한 재활치료진이 팀을 이루어야 환자의 삶의 질을 최대한 회복시키는 치료가 기대된다.

 

이러한 전문 재활치료가 팀을 이루어서 시행되는 이유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 혼자서 환자를 접근했을 때 얻지 못하는 환자에 대한 정보 및 예후를 팀 내 소통을 통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환자의 행동이나 표현 방식에 대해 같이 해석함으로서 환자에 대한 재활치료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최근에 재활치료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한의사들이 모든 재활치료를 처방 및 시행하려 하는 시도가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의사도 몇몇 전문과를 제외하고는 기본 물리치료의 처방권만 있으며, 시행도 물리치료사 또는 작업치료사에 의해 치료하는 의료법과는 상반되게, 한의사들은 전문 분야에 상관없이 처방하고 심지어는 직접 시행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환자에게 심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첫째로, 한의사들이 시행하려 하는 물리요법이라는 것이 대부분 현대의학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한방 진료의 원리와는 근본부터 차이가 있다.

 

이는 이제껏 한의사들이 주장했던, 전통 동양 철학에서 비롯되어 독창적인 원리로 인체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한방의학의 근본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만약 현대의학의 치료법을 한방에서 사용하려면, 그 치료법을 한의학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이에 대해 충분한 검증을 거친 후에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근거가 미약하다보니 한의학계는 현대의학을 근거로 한 재활의학 교과서 및 물리치료학 교과서를 표절하여 한방재활의학 교과서를 편찬하였고, 이를 근거로 간호조무사의 도움만으로 모든 한의사가 직접 물리치료 및 작업치료를 할 수 있다는 대한한의학협회의 의견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문회의에서 허용하였다니 어이없는 결과이다.

 

현재는 보건복지부의 담당부서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의료인이 마땅히 가져야할 윤리성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이를 토대로 한 치료를 받을 환자들에게도 해를 끼칠 것이 명백하다.

 

두 번째로 한방 물리요법이 국민에게 끼칠 수 있는 문제점은, 환자들이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시행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의사들이 주장하는 대로 모든 재활치료를 한의사가 처방하고 시행한다면, 이는 앞에서 설명한 재활치료의 목적과 취지에 모두 어긋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재활치료에 대한 지식 및 경험이 없는 한의사가 다른 치료진과의 소통이나 협력 없이 전문 재활치료를 혼자 처방 및 시행한다면, 이는 환자가 마땅히 누려야할 제대로 치료 받을 권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제도가 있으며, 전문 재활치료에 대한 처방권을 재활의학과 의사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그만큼 이 분야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환자에게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시행하는 것은 향후 발생할 추가적인 질환을 예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의료비를 절감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현재 전문적 지식 및 경험을 바탕으로 재활의학과 의사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재활치료에 대한 처방권을 한의사에게 부여하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하며, 한의사가 주장하는 한방 물리요법의 한의학적 근거에 대해 철저히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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