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先)진입 의료기술, 진입장벽 과도한 낮추기 우려"
최준일 대한영상의학회 정책연구이사(서울성모병원 영상의학과)
2025.02.17 05:46 댓글쓰기



[특별기고] 설연휴 직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딥시크 쇼크'에서 알 수 있듯이 인공지능(AI) 활용은 우리 생활의 모든 분야에 성큼 다가왔으며 이제는 인공지능이 없이는 업무를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고백하는 젊은 직장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의료분야에서도 인공지능 도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일반촬영이나 CT, MRI 등의 영상의학검사나 안저검사, 심전도, 뇌파검사 등의 의학영상 분석 인공지능 기술, 환자 신체신호를 분석해 심정지 등 심각한 이벤트가 발생할 것을 경고하는 예후 예측 인공지능 기술 등이 소개돼 이미 일부 분야에서는 사용되고 있다.


또한 자동 차트 정리 등 다양한 의료용 인공지능 기술들이 가까운 시일내에 실제 환자 진료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법률상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인공지능 의료기술, 특히 진단보조나 예후 예측 등을 위한 소프트웨어는 기존 의료행위와 달라 건강보험 급여 혹은 비급여 행위로 분류돼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새로운 의료행위를 급여나 비급여로 도입하는 방법인 신의료기술평가가 이러한 인공지능을 이용한 진단보조 및 진료보조 소프트웨어 평가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료기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존 의료행위와 대상, 목적, 방법 등에서 다른 점이 있고, 기존 행위보다 최소한 열등하지 않다는 높은 수준의 문헌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경우 대상과 목적은 동일하며 방법에 있어서도 최종 판단은 결국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 의사가 하기 때문에 유효한 차이가 없으며, 진단보조 특성상 전향적 무작위 연구 등의 높은 수준의 근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혁신의료기술평가·신의료기술 평가유예' 도입 적용


이에 기존 의료기술 및 의료기기와 다른 인공지능 의료기술 평가를 위해 새로운 급여, 비급여 진입 경로가 필요했으며 '혁신의료기술'이라는 경로가 이를 위해 개발, 도입됐다. 


2019년 도입된 '혁신의료기술평가'는 안전성은 인정됐지만 유효성에 관한 근거가 부족한 기술 중 잠재적 가치가 인정된 혁신적인 의료기술을, 기존 신의료기술 정의에 맞지 않더라도 사용기간, 사용목적, 사용대상 및 사용방법 등에 대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임상에서 사용이 가능토록 허용하고 건강보험에 급여 혹은 가격이 제한된 비급여로 3년간 임시 등재하는 제도다. 


그 외에도 기존 신의료기술평가 체계 내에서도 의료기술 조기 시장진입을 허용하고 신의료기술평가를 2년간 유예하는 '신의료기술 평가유예'라는, 주로 새로운 시술이나 수술에 이용되던 제도를 또 다른 경로로 이용하고 있다. 


신의료기술 평가유예의 경우 가격 제한이 없는 비급여로 시장 진입이 허용된다.


 2025년부터 '선(先)진입의료기술' 새로운 용어 도입


하지만 이 두가지 경로 역시 임시등재라는 한계가 있고 개발업체 입장에서는 시장 진입에 어려움이 있기에 정부는 2025년부터 혁신의료기술, 신의료기술 평가유예, 제한적 의료기술 등을 통합해 '선(先)진입의료기술'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근거창출연구 수행 의무를 폐지하면서 임시등재 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심지어 새로운 의료기기 시장진입 절차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식약처 심사만 통과하면 다른 심사 없이 즉시 새로운 의료기술로 비급여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또한 안전성 문제가 없다면 임시등재 기간에 보여준 기술 성과와 무관하게 영원히 퇴출되지 않는 것을 보장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발표했고 일부는 이미 2025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기술 아닌 의료인과 환자 관점에서 제도 개편 이뤄져야"


이는 산업계에는 매우 친화적이지만 의료 주체인 환자와 의료진 입장에서는, 특히 진단보조 인공지능 의료기술과 관련해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첫째, 신의료기술 평가유예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됐다. 이는 근거창출 연구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지만 단기간에 매우 많은 증례 수집이 가능한 진단보조 인공지능 의료기술에서 정말 필요한지 의문스러우며 오히려 긴 유예기간이 임상적 유용성 근거 창출보다 이윤 추구에 악용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둘째, 임시등재 기간 중 평가해본 결과 기술 근거나 유효성이 부족해도 환자에게 위해(危害)만 없다면 선진입만으로 영원히 급여 혹은 비급여로 남게 됐다. 


위해(危害)가 발생하면 즉시 사용을 중단시킨다는 조건으로 이러한 파격적인 제도 변경이 이뤄졌는데,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경우 기술 적용에 따른 위해 발생 인과관계 증명이 수술이나 시술 등의 독립적인 의료행위와 비교할 때 매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일단 선진입 의료기술만 된다면 기술 유효성과 관계 없이 영원히 급여 혹은 비급여로 남게 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셋째, 혁신의료기술의 경우 선진입과 동시에 반드시 수행해야 했던 근거창출 연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변경시켰는데, 이는 임상적 근거가 아직 부족하지만 잠재성이 있는 기술을 시장에 선진입시켜 근거를 창출하고자 하는 제도 취지에 완전히 역행한다.


또한 선진입을 근거창출보다는 수입 증가에 이용하라는 잘못된 신호를 기업과 의료기관에 줄 가능성이 높다. 


넷째, 동의서 구득을 강조했으나 이는 수술이나 시술 등의 독립적인 행위가 아닌 진단보조 의료기술에서는 실제 적용이 어려울 수 있으며 이미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환자에게 동의, 설명 없이 무조건 진단보조 의료기술을 적용하는, 환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탈이 벌어지고 있다.


두 가지 경로 중 하나인 신의료기술 평가유예의 경우, 원래 수술이나 시술 등의 독립적인 의료기술에 적용되던 경로로 진단보조 인공지능 등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인공지능 의료기술은 혁신의료기술 경로로 가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오히려 2025년 1월부터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과 디지털 웨어러블 기술 등 비침습적 의료기기가 모두 평가유예 대상으로 확대됐다.


이는 혁신의료기술 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나며 비급여 가격 제한이 없는 신의료기술 평가유예로 몰리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실제 기술을 사용하는 의료진과 환자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하며, 지나치게 의료를 산업 관점에서 접근할 때 저지를 수 있는 정책적 오류다. 


시대 흐름에 맞춰 인공지능 기술은 환자 진료에 적용돼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며 의사로서 의료 인공지능을 이용, 환자에게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당연히 환영한다. 하지만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인간이 기술보다 먼저 고려돼야 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이번 제도 개편 역시 산업 및 기술 관점이 아닌 의료 관점에서, 또 환자와 의료진 입장에서 다시 한번 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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