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對 한의사 그리고 한국 제약산업
이정환 기자
2014.01.28 20:33 댓글쓰기

사법부가 사상 초유의 고시 무효화와 천연물신약에 대한 한의사 처방권 인정이라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전문의약품 처방권을 두고 적잖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판결 직후 한의계, 의료계, 정부(식약처)는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만을 앞세우는 모양새다.

 

한의사들은 "식약처와 제약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의사들은 "천연물신약을 처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패소한 1심에 불복해 항소를 결정했다.

 

저마다 자신이 지켜내야 할 이익에 최대한 집중, 결단코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의사, 한의사, 정부가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무관심 속 울상이 된 산업이 있다. 바로 천연물신약의 세계화다.

 

복지부는 천연물신약 특별법 및 고시 제정 당시 국내 제약산업의 글로벌화 및 천연물신약의 세계 진출을 명분으로 삼았다.

 

정부 지원에 따라 상위제약사를 포함한 국내 제약계는 미국, 동남아 등 세계 시장 문을 두드리며 라이센스 아웃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이번 고시 무효 판결로 국내 천연물신약 산업의 세계화는 법적으로 제동이 걸리게 됐다.

 

고시 무효로 이미 허가된 천연물신약의 특허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유명무실해진 고시를 이용해 새롭게 신약 개발에 투자하고 세계 진출을 위한 시판 허가를 받으려 애쓰는 제약사가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는 향후 협회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 입장을 천명한 터라 천연물신약 처방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결국 의사와 한의사 간 처방권 다툼 속에서 천연물신약 산업은 발달장애 처지에 놓이게 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법부는 판결문에서 천연물신약의 한의사 처방 금지가 위법하다고 지적한 반면, 한의사들의 독점 처방권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즉, 판결의 본질은 의사, 한의사 간 누군가의 승패를 가르기 보다는 의학과 한의학이 공존하는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해 식약처가 모두에게 평등한 제도를 새롭게 정립하라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판결이 지닌 참 뜻을 읽어내지 못한 의료계와 한의계는 경주마식 언론보도를 통해 제각각 시선으로 판결을 해석한 주장만을 강조하는게 현실이다.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천연물신약 산업의 발전을 위해 소모적인 다툼을 지속하기 보다는 소통과 화합을 통해 산업을 살리고 의사-한의사 간 천연물신약 처방에 대한 합리적인 접점을 신속히 찾는게 먼 훗날 국내 보건의료산업이 건강해 질 수 있는 해법이다.

 

넓은 시야로 천연물신약 세계화라는 광활한 숲을 지켜 내야 할 의사, 한의사, 정부가 눈 앞의 처방권에만 매몰돼 나무 한 그루에만 물을 주는 우(愚)를 범하지는 않을까 안타깝다.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표 천연물신약은 글로벌 경쟁은 차치하고 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열매도 맺지 못한 채 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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