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종식 시점서 곱씹어보는 정부 역할
2015.10.06 12:11 댓글쓰기

‘이 보고서는 카트리나 희생자에 대한 기도와 추념(追念)으로 발간됐다. 그들의 가족, 친구, 잃어버린 삶과 재산, 꿈은 너무 컸다. 그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모든 미국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2005년 8월 이후 미국 의회가 발간한 200여 페이지짜리 백서 ‘계획의 실패’ 서문이다.
 
이재민 110만명, 확인된 사망·실종자만 2500명으로 기록된다. 제방이 무너지면서 뉴올리언스 지역 80%가 침수됐고, 재산 손실도 1080억 달러에 달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 재해였다.
 
당시 외신을 통해 전해진 뉴올리언스 모습은 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었다. 재난 대응이 총체적으로 부실했고,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고립돼 죽어갔다. 수습되지 못한 시체는 부패하며 악취가 진동했다.
 
의약품과 구호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대피소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생존자들은 먹을 것을 찾아 상점을 약탈하는 등 치안이 붕괴됐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많은 언론들은 '무정부 상태'로 묘사했다.
 
그러나 미국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실패를 교훈 삼았다. 반년 동안 83만여쪽의 자료를 검토하고 22차례의 청문회를 거쳐 300여명을 증언대에 세운 끝에 백서를 작성했다.
 
그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제외된 이는 없었다. 미국 의회는 백서 작업을 위해 증언이 필요한 모두를 불러 의혹을 제거하고 문제점들을 들췄으며 사실을 찾아냈다.
 
그 결과 이 백서에는 17가지 교훈과 135개의 권고안이 담겼다. 이를 토대로 의회는 1년여 만에 '포스트 카트리나 재난관리개혁법'을 처리했다. 재난관리청장은 부장관급으로 격상, 재난 관련 모든 업무를 총괄하게 하는 등 후속대책을 마련해 나갔다.
 
그 과정이 결코 달갑지 않았지만 외면하지 않은 것은 재발 방지책을 세우는게 재앙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가 희생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핵심 쟁점은 단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근) 사태 증인 채택이었다.
 
우리 국회는 메르스 사태 이후 중동호흡기증후군대책특별위원회를 꾸려 9차례에 걸쳐 진상을 파악했고, 37명의 증언을 들었다.
 
그럼에도 남은 의혹이 있다는 야당 요구에 따라 여야 지도부의 합의로 국정감사 중 하루 메르스만을 위한 시간이 마련됐다.
 
하지만 지난 달 10일 첫 국정감사에서부터 문형표 前 복지부장관, 최원영 前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김진수 비서관의 증인 채택을 두고 여야가 논쟁을 벌이더니 시작과 동시에 정회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도 메르스 대란의 3대 주체인 복지부-청와대-서울삼성병원이 한 자리에 나와 남은 의문을 풀어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가 이어졌고, 이를 막는 여당의 접전이 여러차례 벌어졌다.
 
결국 메르스 국정감사는 무산됐다. 그 과정에서 문 前 장관은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연락없이 불참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고, 또 한번 국회의 부름을 받으며 두 번이나 증인으로 의결되는 해프닝이 연출됐다.
 
메르스 초기대응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이 바로 정부의 비밀주의다. 국회가 메르스 후속 조치 중 가장 먼저 정보공개 의무를 명문화한 입법을 한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 앞에 나서 각종 의혹을 해명하고 더 나은 대책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에 서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메르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당시, '메르스 병원' 리스트를 SNS에 퍼 나르고 인터넷에서 예방 비책을 찾아야 했던 국민들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메르스 종식을 앞둔 지금도 이 같은 고민은 떨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36명의 국민을 잃으며 무엇을 반성하고 또 어떤 교훈을 얻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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