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공짜노동과 '관습(慣習) or 인습(因習)'
고재우 기자
2018.05.11 11:58 댓글쓰기
[수첩]"관습"이라고 했다. 작가 겸 연출가로 이름을 날렸던 이윤택은 다수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 논란에 대해 '관습'이라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우리는 종종 과거로부터 이어온 인습(因習)을 관습(慣習)과 혼동해 정당화하는 사례를 접한다.
 
병원계도 마찬가지다. 권위적인 상하관계에서 오는 성폭행 및 성추행과 함께 공짜노동 문제는 관습이 아닌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인습이었다. 공짜노동은 근무시간으로 계산되지 않는 무임금 노동을 뜻한다. 간호사의 경우 인수인계를 비롯해 시간 외 근무와 병원 내 행사준비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간호사들의 업무 외 부담 가중은 필연적이었다. 지난 2015년 기준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 당 간호사수가 594명으로, OECD 평균인 898명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 병원들의 운영비 절감 노력이 더해지면서 간호인력의 공짜노동은 당연한 일이 됐다.
 
문제는 병원들의 자세다. 만성화된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호소하면서도, 근무환경 개선 노력은 미진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H대의료원의 ‘쪽지 인수인계’ 논란이다.

해당 논란은 의료원 일부 보직자가 시간 외 근로(공짜노동)을 없애겠다며, 간호사들의 업무 인수인계를 쪽지로 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환자들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를 쪽지로 주고받도록 지시한 곳은 지난해 조직문화 개선 대책으로 정시 출퇴근, 자율적 연차휴가 등 당연한 사항을 대책으로 내놓은 병원이기도 하다.

당시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들 인수인계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면 대 면(面 對 面)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병원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황당한 방법으로 인수인계를 지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실시했던 근로감독 통보를 받은 병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대병원·고대안암병원 등은 공짜노동에 대한 임금 미지급금으로 각각 11억 2800만원과 65억원 등을 통보받았다.
 
특히 서울대병원의 경우 2014년 12월부터 2017년 7월(32개월)까지 확인 가능한 미지급금이 2800만원, 2017년 7월~2017년 11월(4개월)은 11억원으로 집계됐지만, 이마저도 줄이기 위해 병원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대해 정부로부터 지적받거나 언론에 회자되지 않으면 병원 측은 문제를 알고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사후약방문식 행태를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관습(慣習)의 사전적 의미는 마땅히 이어나가야 할 전통이고, 인습(因習)은 예로부터 전해 온 합리적 관점에서 가치가 의심되거나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간호인력을 포함한 병원 내 공짜노동이 관습이었다 할지라도 오늘날 이는 과감히 없애거나, 아니면 점진적으로 개선해서 바로잡아야 할 인습이 명백하다.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이는 가치의 문제도 아니고, 과격한 노조의 선동도 아니다. 공짜노동은 사라져야 할 인습이고 과감히 개선돼야 할 시대착오적 '구태(舊態)' 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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