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엄정한 대처는 응급실 폭행만 해당되나
고재우 기자
2018.09.10 11:41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수첩] 최근 편집국으로 한 통의 이메일이 전달됐다. 지방 한 요양병원 A의사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외과 전문의인 A씨는 보호자로부터 입원 요청을 받았고, 의학적 판단에 따라 치료가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더욱이 퇴원 당일 재입원이었기에 시스템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보호자들의 행패가 시작됐다. A씨에 따르면 오전에는 환자 며느리가 폭언과 난동을 일으켰고, 오후에는 환자의 아들이 철제의자로 위협하고 멱살을 잡기도 했다.

A씨가 순순히 멱살잡이를 당했다면 좋았겠지만 A씨도 보호자 멱살을 함께 잡았고, 관할 경찰서는 해당 사안을 ‘쌍방폭행’으로 결론내리고 검찰로 송치했다.
 
최근 응급실 내 폭행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민갑룡 경찰청장은 “응급실은 국민의 생명·신체를 다루는 중요한 공간이고, 여기서 응급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폭행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매우 안타깝다”며 엄정한 대처를 천명했다.

주목할 점은 엄정한 대처의 범위다. 민갑룡 청장의 발언대라로면 경찰은 병원, 그것도 응급실에서 발생한 폭행사건만을 그 대상으로 한정했다.
 
경찰청 관계자 역시 “응급실에 초점을 맞춰 얘기한 것이고, 의료기관 전체까지 확대한 대응은 협의체를 통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전체가 아닌 응급실로 국한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의료법 12조 2·3항은 각각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 의료기관 점거 등을 통한 진료방해를 엄격히 금하고 동법 87조 1항은 이를 어긴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같은 경찰의 인식처럼 의료기관 내 폭행에 대해 의료법을 엄격히 적용한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경찰은 의료기관 내 폭행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 등 소극적 대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실제로 지난해 의료진 폭행·협박사건은 893건에 달했으나, 이중 처벌을 받은 사람은 93명에 그쳤다. 경찰의 현실인식이 떨어진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전문의 A씨는 지난한 법정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관할 경찰서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의료법을 적용하는 대신 쌍방폭행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법무팀에 해당 사실을 알렸고, 의협은 검찰에 탄원서를 넣기도 했다.
 
최근 국회에서는 응급실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내 의료인 폭행 방지와 관련한 법안이 상정돼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은 의료인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인 등을 폭행·협박하거나 의료용 시설을 파괴하는 등 응급의료를 방해하는 행위로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의료인이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에 대해 의협 관계자는 "지금도 의료기관 내 폭행 당사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있다"며 "중요한 것은 해당 법을 적용하려는 경찰의 의지이고, 이 때문에 (의협이) 경찰에 의료기관 내 폭행 대응 매뉴얼 마련을 촉구하는 등 목소리를 낸 것이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법이 개정되거나 새로운 법이 신설되는 것만으로는 의료기관 내 폭행을 막을 수 없다. 응급실을 넘어 의료기관 내 폭행을 근절하기 위한 ‘키(Key)’는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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