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의대 증원 문제로 불거진 의료대란이 장기화되면서 꾸준히 나오는 뉴스가 있다. 바로 한의사들의 영역 확대 요구 소식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10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금과 같이 의료인력 수급난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지자체 차원을 넘어 해당 지역민들이 스스로 의료인 찾기에 나서야 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의사가 부족한 지역·공공·필수의료 분야에서 한의사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이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대한한의사협회가 의사 수급 차질에 대비해 2년의 추가 교육을 받은 한의사에게 의사면허 자격을 부여해 지역공공의료기관에 의무적으로 투입하는 '지역필수공공의료한정의사' 면허제도를 신설하자고 제안한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 추석 연휴기간에는 한의원과 한방병원 진료실 문을 연 결과 경증 응급환자의 응급실 쏠림이 줄었다고 주장하며, 앞으로 경증 응급환자 진료에 적극 나서겠다고도 했다. 또 여기저기서 난임부부 한의약 지원사업 확대를 요청하는 시도한의사회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반면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사용한 결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벌금형을 받았다.
또한 근래에는 초음파 사용에 관한 대법원 판결 후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도입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거중심의학을 바탕으로 한 현대의학에서 한방 치료가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는 나라는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중국계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부모님 세대에 비해 침, 뜸, 부항, 한약 등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보완대체의학으로서 일부 역할이 있고,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이 발견된 것처럼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면 새로운 약물이 개발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갸우뚱하는 점들이 적잖다.
소아심장을 전공한 박인숙 전(前) 의원이 최근 본인의 SNS에서 밝혔듯이 한의학이 상당 부분 의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박 전 의원은 본인이 저술한 '선천성 심장병’ 교과서의 많은 내용이 '한방소아청소년의학' 책에 그대로 실려서 저작권법으로 고소한 상태기도 하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왜 한의학에서 방실중격결손 등 선천성 심장병에 대해 알려 하는지, 그것을 그 분야 전공자의 강의나 실습 없이 제대로 알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인지 궁금하다. 차라리 청색증 등 한의학의 한계를 벗어나는 증상이나 징후가 보이면 빨리 의사에게 보내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적 근거 부족 한의학…임신부 사안 등 자칫 국민들 안전 우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웹사이트에는 최근 몇 년간 보건의료인 국가시험 기출문제가 올라와 있다.
요즘에 챗GPT(ChatGPT) 등 생성형 AI가 의사국가시험, 한의사국가시험, 간호사국가시험 등을 통과했다는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데, 한 유튜버가 한의사국가시험의 몇 문제를 챗GPT에게 풀어보도록 한 영상을 봤다.
대부분 챗GPT가 정답을 맞혔지만 유독 사상의학 영역은 오답(誤答) 투성이었다. 이는 챗GPT의 한계일까, 아니면 사상의학 자체의 과학적 근거 부족 때문일까.
여기서 더욱 놀라운 것은 임신부 관련 문제였다.
임신 10주인 32세 임부가 복통과 출혈로 병원에 왔는데 자궁목이 열렸고 태아막 파열이 관찰됐다고 한다. 치료원칙을 묻는 5지 선다형 문제의 정답은 '거어하태(祛瘀下胎)'였다. 챗GPT가 정답을 맞혔는데 어혈을 제거하고 태아를 안정시키는 치료법으로 출혈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태아를 보호하는 데 적합하다고 했다.
이 내용을 챗GPT에게 현대의학적으로 어떤 상황이고, 어떤 처치가 필요한지 다시 묻자 임신 초기에 발생한 '조기양막파열(PPROM)' 또는 임신 초기 '유산 위기'로 볼 수 있다며, 조산 또는 유산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으로 매우 긴급한 처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즉시 병원에서 항생제, 수액, 필요시 자궁수축억제제 등 종합적인 치료와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중증 출혈 발생 시 수술적 처치가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들도 바짝 긴장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한의학에서 치료하려는지 걱정이 앞선다.
몇 개월 전부터 평일 밤마다 유튜브 채널 '쉬운건강'에서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올바른 건강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이러니인 것은 방송 영상 앞에 '약(藥) 없이 완치한다, 근본적으로 치료한다'는 식의 엉뚱한 광고가 붙는다.
클릭해 보니 일반인 대상으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건강도서 시리즈를 낸 어느 한의사를 홍보하는 내용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 책에서 의사와 제약회사를 '마피아들 횡포'라는 거친 표현까지 써가며 비난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면서 약을 끊고 기승전결 침, 뜸, 부항으로 치료하라고 한다.
그 근거는 도대체 뭘까. 언제까지 얼마나 침, 뜸, 부항으로 치료하면 질병이 없어진다는 걸까. 인터넷 서점의 댓글에는 저자에 대한 칭찬과 함께 그동안 의사에게 속았다는 내용 일색이다.
의료윤리 원칙의 첫 번째는 "해(害)를 가하지 말라(First, do no harm; Primum non nocere)"이다. 선천성 심장병, 유산 위기, 심근경색증의 고위험 상황에서, 심지어 임상경험이 풍부한 의사도 자신의 전문영역이 아니면 즉시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AI시대를 맞아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차라리 국민 스스로 챗GPT에게 먼저 물어보고 적절한 진료기관을 선택하도록 권장하는 게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일반인들에게 정확한 의료정보를 얻기 위한 프롬프트 작성법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