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학병원 교수가 엘스비어(Elsevier)·스탠퍼드대학 글로벌 연구팀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상위 2% 연구자(Top 2% Scientists)’ 명단에 2021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등재됐다. 지난해 단일 연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연구자 19위, 임상의사(MD) 부문 1위에 올랐다. 전 세계 마취통증의학 분야로는 10위(상위 0.02%)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주인공은 강현 중앙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다. 강현 교수는 데일리메디와 만나 '선순환 연구 구조'를 본인만의 연구 철학으로 소개하고, 절대적 연구시간을 확보하는 습관을 강조했다. 또한 이번 성과는 개인적 영예가 아닌 한국 마취통증의학 분야가 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전했다. [편집자주]
강현 교수는 5년 연속 세계 상위 2% 연구자 선정 소감으로 “개인적인 영예를 넘어 한국 마취통증의학의 국제적 경쟁력을 입증한 의미 있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높은 수준의 국내 임상 환경과 그 안에서 축적된 경험이 연구로 연결되고 다시 국제적 근거로 인정받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 의사 부문 1위’ 결과를 상징적이라고 평가했다.
종양학·심장학·내분비대사 분야처럼 전통적으로 연구 규모가 크고 인용 지표가 높은 일부 임상의학 분야와 비교해 마취통증의학 분야는 학문적 영향력이 낮게 평가돼 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 연구자 중 19위에 올랐다는 점 역시 강 교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진료로 보내는 임상의사 특성을 고려하면 이는 임상 진료와 연구가 결코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강 교수의 연구는 3개의 축으로 형성돼 있다. ▲임상 연구 ▲전임상 연구 ▲통계 및 근거합성·연구방법론을 중심으로 한 드라이랩 연구 등이다.
그는 “세 영역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통합하는 연구 구조를 구축해 온 게 특징”이라며 “임상에서 출발한 질문이 기초연구와 근거 평가를 거쳐 다시 진료로 환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임상연구에서 그는 수술 후 통증 관리와 회복, 오심·구토 예방, 국소마취제 및 진통제 작용 기전, 수술 후 회복 최적화 등 진료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 질문을 도출한다.
전임상연구에서는 다양한 동물 모델을 활용해 통증과 유착이 발생하는 기전을 규명하고 임상에서 관찰된 현상을 기초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이어 드라이랩 연구에서는 임상 근거의 질을 높이고 연구 결과를 신뢰도 있게 해석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다.
이러한 3가지 축이 실제 구현된 대표적인 사례로 강 교수는 ‘국소마취제의 진통과 항염증 효과를 활용한 항유착제 개발 연구’를 꼽았다.
그는 통증과 유착이 동시에 발생하는 곳이 수술 부위라는 임상적 관찰에서 이 연구를 시작했고, 수술 후 통증 모델과 수술 후 유착 모델이라는 두 전임상 모델을 하나의 연구 질문 안에서 융합했다.
이 전임상 결과 일부를 다양한 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로 확장, 나아가 전임상연구와 임상연구의 체계적 문헌고찰·메타분석을 통해 근거 수준을 정교하게 평가했다.
그는 “하나의 연구 질문이 기초 기전, 임상 적용, 근거 합성을 모두 포함하는 다층적 근거를 갖추도록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인용이 많이 된 연구도 각별히 기억하고 있다. 표본수 산출 방법과 임상 연구에서 흔히 문제 되는 결측치 예방 및 처리 방법을 다룬 논문들은 구글 스콜라 기준으로 약 3000회 이상 인용됐다.
강 교수는 “임상 연구자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질문에 답하는 연구가 장기적으로 더 큰 학문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선순환 연구구조 마련하고 임상 연구자 질문에 답하는 연구 영향력 중요”
“개인 시간 쪼개는 연구는 한계, 제도적으로 보장 필요”
강 교수 연구 동력은 임상에서 만나는 환자 질문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에서 나온다.
그는 “수술 전 평가실을 새롭게 운영하면서 많은 환자들로부터 ‘수술 후 치매가 생기나’, ‘마취가 인지기능 저하를 일으키나’ 등의 질문을 받았고, 근거에 기반한 답을 고민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이어 “환자의 작은 변화도 놓칠 수 없는 긴장된 상황 속에서 진료를 이어가다 보면 ‘왜 이 반응이 나타나는가’,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수술을 도울 수 있을까’ 등이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습관화도 그가 지치지 않는 비결이다. 연구의 절대 시간 확보가 중요하다고 보는 그는 이른 아침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하고 있다. 이동 시간도 틈틈이 활용한다.
강 교수는 “운전을 하지 않는 것도 개인적인 원칙”이라며 “출·퇴근길에는 가족 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짧게 휴식을 취하거나 문헌 등을 읽곤 한다. 이동 시간을 연구나 사색의 시간으로 전환할 수 있어 매우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소개했다.
진료와 연구 시간을 철저히 분리하기도 하는데, 임상 시간에는 100% 환자 진료에 집중하고, 연구 시간에는 사고 모드를 완전히 전환해 분석·집필·문헌 검토에 몰입하는 식이다.
그는 “짧은 시간에도 높은 집중이 가능한 통계적 분석 등은 ‘짧지만 자주’라는 원칙으로 루틴을 유지했다”며 “이러한 반복과 축적이 연구 생산성 유지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연구를 자신의 하루 일과로 체화한 그는 “세계가 필요로 하는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신뢰도 있게 답할 수 있는 연구 생태계에서 국제 경쟁력이 나온다”고 봤다.
이에 우리나라 연구자 육성을 위해 필요한 지원으로 ▲임상 기반 질문을 발굴할 수 있는 환경 ▲연구방법론과 통계 교육 체계화 ▲국제 네트워크 확장 ▲연구시간 보장 제도 등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나라 임상은 세계적 수준인 만큼 임상 현장에서 도출되는 질문만 잘 구조화해도 가치 있는 연구 주제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이를 돕는 시스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연구는 시간이 축적돼 결과가 나오는 일이기에 개인 시간만 쪼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제도적으로 연구시간을 보장하는 게 연구 역량 강화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마취통증의학 발전도 작은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강 교수는 “임상에서 떠오른 질문을 기록하고 동료와 토론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누구나 국제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끝으로 학업·진료·연구를 병행하며 쉼 없이 달려온 그를 지탱해 준 가족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는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적잖았고 그로 인해 가족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지 못한 적도 많았다”며 “그동안 묵묵히 지지해 준 가족, 특히 아내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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