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력 추계가 보여준 의대 정원 논의 '맹점'
채희복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의정사태 비대위원장)
2026.01.05 07:04 댓글쓰기

의료인력추계위원회(이하 추계위)는 지난 12월 31일 의료인력 수급체계에 대한 예측치를 발표하고, 2035년 의사 인력 부족 규모를 1535~4923명, 2040년에는 5074~1만1136명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추계 결과를 접하며, 내란특검이 1년간 조사한 끝에 근거가 없다고 밝혔던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앞서 조규홍 前 보건복지부 장관은 2024년 1월 5일 기자회견에서 “2035년에 1만5000~2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2025년부터 매년 2000명씩 늘려 10년 뒤 누적 인원 2만 명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윤석열 정부의 해법은 부족한 의사 수만큼을 추가로 선발하면, 낙수효과에 의해 자연스럽게 잉여 인력이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로 이동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 현실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대 졸업생들이 왜 일반외과·흉부외과 등 소위 기피과를 선택하지 않게 됐는지, 또 지역 의료가 왜 붕괴 직전의 상황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알아야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필수의료과는 응급 대응과 24시간 대기, 많은 인력이 필요한 구조임에도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행위별 수가는 필수의료과들의 존립을 어렵게 만들었다. 


경영을 우선시하는 사립병원에서는 이런 과들이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라고 말한다. 또한 중환자와 사망 위험이 높은 환자를 다루는 과의 특성상, 확률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의료사고에 대해 아무런 안전 보장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다음으로 지역의료의 문제를 살펴보면, 지방에서 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진단과 동시에 서울로 가서 암 치료를 받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방 병원에서는 중환자 암 환자가 오지 않게 되면서 전문의들이 해당 질환에 대한 경험을 점차 쌓기 어려워지고, 어쩌다 환자가 오더라도 이를 위해 인력이나 의료 장비를 상시로 준비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결국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또 하나는 의료인력 측면이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들이 수도권에 6000병상 이상의 분원을 대거 건립하면서 의료인력에 대한 수요가 최근 5년 사이 갑자기 늘어났다. 


그 수요는 지방 대학병원 교수들의 수평 이동과 이제 막 전임의 수련을 마친 전문의들을 데려가는 방식으로 충당되고 있다. 


공석이 된 지방 대학병원 교수나 종합병원 전문의 자리에는 구인 광고를 내도 올 만한 전문의를 찾기 어렵다.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해법이 일 잘하고 있던 전공의들을 몰아내면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앞서 살펴본 원인들에 대한 핀셋 정책을 제시해야 문제 해결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사회의료보험 체계에서 본 의대 정원


2027학년도 의대생 정원을 결정하기 전에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사회의료보험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회의료보험이란 보험료는 차등을 둬 징수하지만, 그 혜택은 국민 모두가 균등하게 받는 제도다. 또한 의료기관(공급자)과 보험가입자(수요자) 모두 건강보험에 강제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미국은 뉴딜 정책 당시인 1935년 사회보장법을 제정하면서 의료를 제외했다. 그 이유는 미국의사회가 의료의 사회화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국 정부는 빈곤층과 노인층만을 대상으로 의료급여를 보장하고, 일반 국민은 사보험을 구매해 자력으로 의료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1977년 공교의료보험을 시작으로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했다. 1977년 당시 산업 발전에 필요한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제공한다는 취지에 맞춰 국가가 국민의 건강권을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사회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를 이해하고 개선하려면, 애초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모델이 됐던 일본 모델을 분석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복지부 공직자들은 공공의료의 개념을 국립대병원이나 의료원에서 시행되는 의료로 국한해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사회의료보험이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을 반증한다. 


이들이 말하는 민간의료와 공공의료의 구분은 미국식 개념이며, 그런 이론으로 추산한 보험가입자의 수요 예측은 우리나라 실정에 전혀 맞지 않는다. 이런 의료수요에 맞춰 의료인력 공급을 예측해서도 안 된다.


또 하나 짚어볼 점은 우리 국민이 사회의료보험 제도를 유지·지속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15년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했던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가 왜 갑자기 문제 많은 골칫덩어리가 됐을까. 


가장 큰 문제는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는 보험 가입자인 환자의 의료수요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상병을 가진 노인 환자가 대형병원에서 5~6개 과를 다니며 진료를 받고 있고, 만성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오가며 거의 매일 약·주사·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현재로서 없다.


사회의료보험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시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료보험이 작동하는 원리는 건강보험공단이 보험가입자들이 낸 보험료 예산에 맞춰 공급자로부터 일정한 의료서비스를 구매하고, 이를 수요자에게 배분하는 구조다. 


그러나 정부는 1998년 1차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진료의뢰서 한 장이면 전국 어느 대학병원에서도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1·2·3차 단계적 진료의뢰체계를 사실상 해체했다. 그 결과 환자의 의료수요를 통제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스스로 내려놨다.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라는 정책 구호는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며, 그만큼 막대한 추가 비용이 필요한 정책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선심성 정책의 일환으로 지방 거주민들의 대진료권 철폐 요구를 받아들인 측면도 있다. 


병원비가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문제와 환자가 자신의 병을 어느 곳에서든 치료받을 자유를 보장하는 문제는 구분돼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돼 있으며, 질병 중증도에 따라 1·2·3차 의료기관을 구분하는 진료의뢰체계는 복원될 필요가 있다. 이미 30년간 익숙해진 우리 국민들이 이를 다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방의료 살리기 위한 의료인력 정책 방향


진료의뢰체계 복원보다 더 시급한 일은 이미 붕괴 직전에 놓인 지방의료를 살리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의대 정원 문제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 지방 의료를 살릴 수 있는 해법은 면허를 가진 의사의 총수가 아니라, 바이탈을 책임질 수 있는 전문의를 양성하는 데 있다. 


즉 의대 졸업생들이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과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거점 국립대병원이나 지방 대학병원에 필수의료과 전문의가 고르게 충원돼, 중증 질환이 대진료권 내에서 자체 해결될 수 있도록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입학 정원을 늘리는 문제 역시 의대 교육과 졸업 후 전공의 수련 질이 유지·확보될 수 있도록 각 대학의 교육 역량을 살펴보고, 질을 담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증원이 이뤄져야 한다. 


신설 의과대학이나 공공의대 설립보다는 기존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하는 것이 비용 효과적이다. 


다만 이런 증원 인원이 필수의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선발 단계부터 필수의료·지방의료 트랙으로 관리하고, 전문의 취득 이후에도 해당 분야나 지역에 남아 일할 수 있도록 국공립병원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에서 전문의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


요약하면, 단순한 수요·공급 논리로 의대 정원 증원을 결정하려면 이제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사회의료보험이 아니라고 공언하고, 자본주의식 의료보험 제도로 기조를 전환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1977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사회의료보험의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명을 살리는 바이탈 의료과, 위급한 응급 환자, 그리고 국가균형발전 관점에서 지방 거주민에게도 골고루 의료 혜택이 돌아가도록 건강보험 재정 지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또한 의료인을 양성하는 데에는 시설과 막대한 비용이 든다. 기존 교육 시설을 활용해서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에 필요한 의료인력을 키워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두 가지 관점에서 의료인력 수급 정책과 의대 정원 증원 문제가 결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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