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사고 ‘손상’…이제 치료에서 ‘예방’
이성우 초대 중앙손상관리센터장 “국가적 차원 손상관리 필요”
2026.04.21 17:21 댓글쓰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 질병관리청 주관 ‘중앙손상관리센터’ 운영 수탁기관으로 선정돼 2025년 4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중앙손상관리센터는 ‘손상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설치된 국내 최초 손상 예방·관리 전문기관으로 국가 차원의 손상 예방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고대안암병원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 동안 센터를 운영하며, 응급의학과 및 외상 분야에서 축적해온 임상 경험과 연구 역량을 기반으로 국가 손상관리체계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초대 센터장은 응급의학과 이성우 교수가 맡아 운영을 이끌고 있다.


“손상, 국민 건강과 직결된 공중보건”


중앙손상관리센터 출범은 단순히 새로운 기관의 설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치료 중심 의료체계에서 예방 중심 국가 시스템으로 전환을 상징하는 변화의 시작점이다. 


사고 이후 대응에 집중해 온 기존 체계에서 벗어나 사고 발생 이전 위험을 국가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다.


손상은 교통사고 및 낙상, 중독, 자해, 폭력 등 외부 요인으로 발생하는 모든 건강 문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사고나 외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이성우 센터장은 “사고는 순간 발생하지만 손상은 오랜 시간 축적된 환경과 구조 결과”라며 “응급실에서 마주하는 손상 대부분은 이미 여러 차례 위험 신호를 보냈던 경우”라고 말했다.


손상은 일상에서 쉽게 발생하는 사고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공중보건 사안이다.  


질병관리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손상으로 외래나 입원을 경험한 사람은 354만5066명이며, 이는 전년과 비교하면 약 23% 증가한 수치다.


응급실 이용 환자는 약 143만명, 입원환자는 약 123만명, 사망자는 약 2만8000여 명에 이른다. 손상으로 인한 연간 진료비는 약 6조4000억원 규모로, 사회·경제적 부담이 큰 영역이다.


이러한 수치는 손상이 단순히 개인 부주의나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한 영역임을 보여준다.


외상센터는 ‘결과 치료’ 관리센터는 ‘사전 예방’


응급실과 외상센터가 손상 결과를 다루는 역할을 수행했다면, 중앙손상관리센터는 이러한 결과가 반복되는 원인을 분석하고,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둔다. 


이에 중앙손상관리센터는 출범 이후 지난 1년간 국가손상통계 정비와 고도화를 추진해왔다. 


응급실 손상환자 심층조사, 입원 및 퇴원 손상환자 심층조사, 사망자료 등을 분석해 손상 발생 경로와 특성을 파악하고 손상이 발생한 경로와 특이점에 대해 분석했다. 


두드러지는 변화는 손상 유형의 전환이다. 과거에는 교통사고 중심의 손상이 주요 문제였다면 최근에는 추락과 미끄러짐 등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손상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고령화와도 연관돼 있다. 70세 이상 고령층에서 추락·낙상은 가장 중요한 손상 유형이다. 지난 10년간 고령층 추락·낙상 손상은 타 연령대에 비해 1.3배, 사망률은 3.3배 증가했다. 


고령층의 추락·낙상은 단순한 골절을 넘어 장기입원과 신체기능 저하, 사망 위험 증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성우 센터장은 “낙상은 개인 부주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환경 및 근력 저하, 만성질환, 돌봄체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대표적인 예방 가능한 손상”이라고 말했다.


손상은 생애주기별로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청소년층에서는 중독 및 자해·자살, 청년층에서는 교통사고와 폭력, 중장년층에서는 산업재해, 고령층에서는 낙상이 주요 유형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손상 예방 전략은 획일적 방식이 아닌 생애주기별 특성을 반영해 설계돼야 한다.


중앙손상관리센터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책, 데이터, 현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노인 낙상 예방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다. 


보건소 담당자와 운동 지도자, 의료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낙상 위험평가, 생활환경 개선, 운동 처방 등의 교육과정을 통해 낙상 전문가를 양성한다.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안전교육도 추진 중이다. 학교 안전교실에서는 사고 사례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어린 시절 형성된 안전 인식이 장기적인 행동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범 1년, 예방 시스템 구축 과정”


이성우 센터장은 “손상 예방은 습관의 문제이며, 어릴 때부터 위험을 인식하고 행동을 바꾸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중앙손상관리센터는 예방 활동 확산을 위해 민·관 협력 체계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심폐소생술과 같은 이미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영역과 연계해 예방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대국민 참여 기반 안전 문화 형성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에는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될 지역손상관리센터와 연계해 중앙은 정책과 데이터를, 지역은 실행을 담당하는 구조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손상 예방이 특정 기관 역할이 아닌 국가 전체시스템으로 작동토록 하는 게 목표다.


이 센터장은 “손상은 사람의 문제이고 예방은 국가 책무”라며 “손상은 개입하면 줄일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공공 위험”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손상관리센터는 이제 막 출범 1년을 앞둔 초기 단계에 있다. 때문에 성과를 단기간에 평가하기 보다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손상예방법이라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지금 데이터 기반 분석과 과학적 개입, 그리고 현장 적용이 결합된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이성우 센터장은 “사고는 순간이지만, 손상은 사회가 방치한 시간의 결과다. 중앙손상관리센터가 사고 이전 위험을 추적하고 예방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를 넘어 환경과 구조를 바꾸는 일, 그것이 이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는 점에서 중앙손상관리센터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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