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떠난지 4개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
류옥하다 전공의(가톨릭의대)
2024.06.10 05:44 댓글쓰기




병원을 떠난 지 넉 달이 흘렀다. 


불확실한 10년 뒤를 향한 의사 수 추계에서 촉발된 전공의 사직 물결은 관성 속에서 수련받던 전공의들이 현 의료제도 모순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는 의료 제공자인 의사, 소비자인 환자 모두 현 의료제도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이미 여론은 정부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정책 추진에 지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의대 증원이 필수‧지역의료를 개선한다는 주장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오히려 의료 질(質) 하락‧의료비 폭증과 같은 부작용만 낳으리라는 전망에 대한 공감대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가 어떠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해도, 그간 축적된 의사 집단의 직역 이기주의, 비윤리성, 도덕적 해이와 자정작용 부재에 국민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의료계에 어떤 전향적인 정책과 조치를 내놓아도, 이미 무너진 신뢰 속에서 이러한 유화책은 의사들의 반발만을 부르고 있다. 


주권자이자 의료의 주체인 국민들은 의사와 정부를 협상테이블에 앉히기보다는 둘의 싸움을 방관하며 타자화돼있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싸움에서는 환자와 의사, 정부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진정으로 모두에게 밝은 우리 의료의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주체별로 자성의 노력과 양보가 필요하지 않을지.


그런 맥락에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한 전공의 우리는 원리주의를 넘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일하는 시민'으로서 적극적인 사회 참여로 시민연대 모색


첫째로 '일하는 시민'이라는 정체성 획득을 통한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필요하다. 


자본가인 일부 병원 경영진을 제외하면, 전공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의사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노동을 판매한 노동자다. 


동시에 기술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율성을 행사하며 타 직역을 지휘하는 신중간계급이기도 한 ‘일하는 시민’이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계층을 접하게 되는 의사 직업 특수성을 십분 활용하면, 우리는 광범위한 사회적인 교류를 수행하는 동시에 여러 사안에서 동료 시민들의 연대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이는 전문성을 시민사회에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된다. 


의사들도 일하는 시민이라는 자각은 지금처럼 파괴적인 대치를 줄여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해외 사례처럼 전공의‧병원‧교수 노조가 활성화되면, 합법적인 연례 파업이나 정부‧건강보험공단‧병원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이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의사들 비난하는 국민들에게 반발‧침묵 아닌 '소통' 확대


둘째로 적극적인 설득을 통한 시민 지지 확보가 필요하다. 


넉 달간의 외침에도 여전히 맹목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에게 어떤 의사라도 답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의사에게 돌을 던지는 것에 쾌감을 가지거나, 지역‧필수의료 종사자 및 지망의사들을 ‘낙수’ 의사 취급하거나, 자신의 생명을 살렸거나 살릴 의사를 테러 집단에 빗대어 악마화하는 시민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고개 돌리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며 문을 닫고 방에 숨는 것은 가장 쉬운 선택이다. 


그러나 정보의 격차가 큰 의료 영역에서 침묵은 사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닌 오만으로만 비칠 염려가 있다. 


그렇기에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행동은 국민과 내부 구성원들 비난에도 불구하고 용기있게 세상에 나와 언어로 의지를 전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왜 이토록 의사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성찰도 병행돼야 한다.


어느 시대나 변화는 대중의 지지에 달려있었다. 의사였던 체 게바라는 배 한 척과 수십의 동료만으로 나라를 뒤집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권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왜 의사들이 괴로워하면서도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여론 풍향이 바뀌는 그날까지 쉼 없는 설득을 지속해야 한다.


지속가능 의료정책 위한 끊임없는 고민과 대안 제시토록 노력


셋째로 의료 정책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와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이번 전공의들의 사직이 한번의 일시적 저항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 의료체계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현 체제의 모순에 대한 비판이라는 쉬운 행동을 넘어, 더 나은 길을 안내하는 수준 높고 성숙한 대응이 필요하다. 


직능 집단을 넘어 전문가 집단으로서 주도권을 가지고 정책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치고, 제도로 정착시킬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이 사태가 사회에 상흔만 남긴 채 끝나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제도적으로 인구집단의 건강 수준 향상 및 보험 재원의 지속가능성, 환자 경험 향상, 의료진의 만족도 향상이라는 네 마리의 토끼를 잡을 방법이 무엇일지, 전공의를 포함한 사회 주체 모두가 수없이 고민하고 토론하며 실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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