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가 일상인 의사들 '환자 안전 위해 노조 설립”
전공의노조 필두로 원자력·중앙보훈병원 등···첫 교수노조 아주대병원 주목
2019.07.19 11:25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성은 기자] 전문직 종사자인 의사는 스스로도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2년 전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국내 첫 의사노조가 설립된 이후 올해까지 3개 의사노조가 탄생했다. 현재도 2개 단체에서 의사노조 설립을 계획 중에 있다. 내년 3월부터 교원 노조법 개정으로 의대교수의 노조활동이 가능해진다. 김재현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장은 대학병원 의사들의 노조 가입이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국의사노조 출범식도 머지 않아 보인다.


단체협약 성공 초창기 의사노조 동남권원자력의학원

2017년 12월 18일 의사노조라는 명칭을 국내에서 처음 사용한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노동조합은 설립된 지 약 1년만인 올해 초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초대 분회장인 김재현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장은 “전담 의사는 응급 환자에 대한 콜을 받으면 언제 어디서든 병원에 가야한다. 응급콜에 응답하지 않으면 면허취소 등 엄격한 처벌을 내리는 상황이지만 사실상 현장에서는 노동이 아닌 의무로서만 취급되는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최근 동남권원자력병원 노조는 단체협상을 통해 응급콜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당직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고 흉부외과처럼 유난히 응급 호출이 많은 진료과를 위해 업무량을 조절하기로 협의하기도 했다.

여기에 저수가로 인한 경영진의 과잉진료 압박이 행해지기 쉬운 환경에서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진료권한위원회도 설립됐다.

위원회 설립 이후 의사가 수익성에 내몰리고 과잉진료를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재현 위원장은 “고가 진료를 재촉하는 병원을 막고 환자 에게도 진료 선택 권한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노조의 설립 배경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노조 설립은 부당한 임상시험 폭로를 이유로 병원 측이 해당 의사를 인사고과 저평가 후 해고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이 같은 부당 징계 및 해고로 12명의 의사들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에 가입해 분회를 조직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의사는 병원의 돈벌이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오직 환자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고민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공의노조 “3대 노동규약 지켜지는 수련환경 만들겠다”

가장 먼저 출범한 의사노조로 전공의노조를 꼽을 수도 있다. 전공의노조는 전공의들의 권익을 대변할 적절한 단체가 없다는 이유에서 지난 2006년 7월 4일 출범했다.

여한솔 현 전공의노조 위원장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법정단체가 아닌 임의단체이기에 전공의 권익 관련 정부 대상 협상 등에 어려움이 있었다. 소위 3대 노동 규약이 지켜지는 수련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전공의노조가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출범 후 13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 위원장은 이에 대해 “다른 노조와는 달리 노조 대상인 전공의들의 직책이 평생 가는 것이 아님에 따라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공의들이 소속된 과와 병원이 나눠지는 현실 또한 힘을 모으기 어려운 이유로 꼽혔다. 이후 대전협은 금년 3월 “노조를 이끌어갈 임원을 선출한데 이어 노조위원회 조직 재정비와 사업장별 지부 설립에 착수했다”며 재출범을 알렸다.

여한솔 위원장은 “1~2년내 각 수련병원별로 노조 지부를 설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부당 인사 저지 중앙보훈병원 의사노조

다음으로 설립된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산하 중앙보훈병원 노동조합은 초대위원장 주인숙 산부인과 전문의가 위원장을 맡아 병원 이사장 측과의 단체협상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인숙 위원장은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에 따른 기본적인 근로법에 따르고 실적을 강요하는 관행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보훈병원에서는 2018년 8월 7일 원장 등 보직의사들을 제외한 140여 명의 의사 중 70%가 넘는 108명이 가입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중앙보훈병원 의사노조는 상급기관을 두지 않고 병원 내 의사들로만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구성원들은 국가유공자에게 최선의 적정진료를 해야 할 보훈병원이 환자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실적을 올리라고 압박하는 현실과 이를 조장하는 경영진에 맞서기 위해 노조를 설립했다.

가장 큰 문제였던 인사 발령 문제는 노조 출범 후 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위원장은 “위암수술 전문의 자리에 대장 전문의가, 수면의학이 필요한 자리에 정신분열가 전문의가 임명되는 시절도 있었다”며 “이러한 문제는 노조 출범 후 해결됐다”고 말했다.

현재 협상 진행에 대해서는 “동남권원자력병원과 달리 이사장 측이 노조에 대한 반감이 크고 노조가 민주노총 등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라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민주노총에 가입하자니 기존 가입자들 반대로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사가 사용자가 아닌 근로자라는 인식이 최근부터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의사노조는 의사 스스로 정체성을 찾는 과정으로 본다”고 전했다.

아주대병원 임상교수 80% “노조 설립 동의”

국내 세 번째 의사노동조합이자 대학병원에서는 처음 설립된 아주대병원 의사노동조합은 최근 의과대학 교수의 노조 가입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교원노조법에 따르면 대학교수는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작년 8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져 내년 3월까지 추가 입법으로 수정될 예정이다.

노재성 아주대병원 의사노동조합 위원장 겸 정신건강의학 교실 교수는 “대학의 교원, 병원의 의사 두 지위는 분리될 수 있다. 두 지위가 나눠서 취급돼야 하고 양쪽 모두에서 노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선 두 병원과 달리 아주대병원의 노조 설립 이유는 병원 경영진으로 인한 특수한 문제라기 보다는 의사 근무환경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는 게 노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의사 과로는 곧 환자 피해로 직결된다. 대부분의 의료사고 원인이 의료진의 과로”라며 “의사의 법적 과실에 대해 법원에서 엄격하게 처벌하는 만큼 의사 근무환경도 보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아주대병원 의사노조는 동남권원자력병원과 같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이다. 아주대의료원은 노동조합 설립 전에 임상교수 의견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약 80%의 임상교수가 조합설립에 동의한 바 있다.

출범 앞둔 의과대학교수노조·정신과봉직의노조

현재 설립 예정에 있는 의사노조로는 의과대학교수노조와 정신과봉직의노조가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는 지난 5월31일 춘계세미나에서 의사노조를 2년 연속 주제로 선정해 논의했다.

권성택 전의교협 회장은 “지금은 의사들이 병원에 어떤 제안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의사노조는 이를 가능토록 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성택 전의교협 회장이 생각하는 의사노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교섭권이다. 특히 사립대병원 소속 교수가 병원이나 재단 측에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노조를 통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 회장은 “사립대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병원에서도 의사들이 병원이나 재단에 목소리를 전하는 게 쉽지 않다”며 “얘기를 전하더라도 효력이 거의 없는데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불어 “대형병원 쏠림현상 문제도 노조와도 관련 있다. 노조로 인해 교섭권을 가지게 된다면 ‘서울대병원은 경증질환을 보지 말라’는 의견을 병원 측에 전달할 수 있다”며 “이런 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금년 2월 민주노총 전국공공 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가칭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노조’를 구상하고 노조 설립 작업에 들어갔다.

의료연대본부에 따르면, 정신과 노조의 경우 각 정신과 봉직의가 속한 병원이 다르기 때문에 기존 의사노조가 단위노조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산별노조 형태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는 “정신과 의사들 입장에서 노동조합이 어떤 역할을 할지 등에 대한 논의는 작년부터 시작됐다”며 “근로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실제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보니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고민이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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