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2년 이상 지속돼 온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가 마무리됐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 당사자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지난 2015년 메르스 발생 이후 상급종합병원의 문턱을 높이고자 시작됐다.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경증환자 비율을 줄이고, 이들을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목적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원가를 대변하는 의협과 병원들을 회원으로 둔 병협의 이해관계가 상충됐고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권고문 채택이 실패했다. 비록 권고문 채택은 무산됐지만 지난 2년 간 많은 논의가 진행됐다. 권고문 채택 무산에도 정부는 2년 간의 논의 사항을 바탕으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계속해서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 시작부터 종료까지 2년 여의 시간을 되돌아봤다.[편집자주]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는 메르스가 발생한 지난 2015년 9월 처음 시작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요성을 체감하고 ‘의료전달체계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출발했다.
이후 의료정책연구소는 내부적으로 의료전달체계 TF 회의를 개최했고, 이를 바탕으로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개선 과제를 공개했다.
당시 의료정책연구소가 제안한 개선 방안은 ▲진료의뢰 수가 신설 ▲회송수가 현실화 ▲의원급 의료기관의 역점질환 확대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 강화 ▲무분별한 병상 증가 억제 ▲의원급 의료기관 진찰료 개선 ▲생활습관병 관리료 신설 등이다.
2016년 1월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첫회의
이후 2016년 1월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가 첫 회의를 시작 했다. 개선 협의체에는 의협, 병협, 환자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해 총 14차의 회의를 진행했다.
이 때부터 의협은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를 위한 의견 수렴을 했다. 2017년 3월에는 아젠다별로 산하단체 의견조회를 가졌다.
하지만 2017년 11월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 초안이 마련 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의협 보험위원회가 상대가치평가 적정수가기획단, 대한개원의협의회, 각과 학회 및 개원의사회 보험이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이의가 제기된 것이다.
권고문 초안은 5가지 항목으로 ▲기능 중심 의료기관 역할 정립 ▲의료기관 기능 강화 지원 ▲환자중심 의료를 위한 기관 간 협력 및 정보 제공 강화 ▲의료기관 기능 정립을 위한 의료자원 관리체계 합리화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상시적 추진체계 마련 등의 내용을 담았다.
쟁점 사안은 두 번째 항목인 의료기관 기능 강화 지원이다. 기능 강화를 위해 경증질환을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할 때나, 중증질환을 의원에서 진료할 때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임익강 보험위원장은 권고문 초안을 발표하면서 “돈을 많이 내더라도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 진료를 받겠다고 하거나, 중증질환을 의원에서 입원 진료하면 디스 어드벤 티지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과 의사회와 학회는 즉각 반발했다. 의협이 그동안 의견 수렴을 했다고 하지만 보험이사 차원에서는 이를 알지 못했고, 의협의 권고문 의견 수렴 방식 역시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신과의사회는 “정신과는 기능중심 역할 정립을 하지 못한다. 의원과 병원,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하는 질환들이 다 같다”며 “의원에서도 환자가 위급할 경우 입원이 필요할 때가 있고 큰 병원에서 퇴원해도 의원에서 치료받을 수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외과의사회도 “권고안 초안 5가지 항목 모두 정부가 의료 비용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라며 “의사들을 위해 의료전달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외과의사회는 이번 권고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의협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중증환자를 볼 때 불이익을 준다는 조항이 오해가 있다”고 해명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상급종합병원의 문턱을 높이는 것이지 의원에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각과 의사회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외과계·의협 비대위, 권고문 공개 ‘반발’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에 대해 외과계 의사회는 즉각 반발 했다.
대한외과의사회를 비롯해 대한정형외과의사회, 대한신경외과 의사회, 대한흉부외과의사회, 직선제 대한산부 인과의사회, 대한비뇨기과의사회, 대한안과의사회,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의료전달체계 권고문 초안이 공개된 지 2주 뒤인 지난해 12월 13일 성명을 통해 권고문 발표 연기를 촉구했다.
이들 의사회는 “의료전달체계 왜곡이 나타나는 것은 의원과 병원이 기능적 차별성이 크지 않아 서로 경쟁하고 있으며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외과 의원의 생존이 보장돼야 한다”며 “특히 외과계 전공의 정원이 줄고 지원율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권고안이 외과계 의원급의 몰락을 부추길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후 의협은 외과계의사회의 의견 수렴을 위한 간담회를 연이어 개최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외과계 의사회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에서 ▲일차의료 기관 입원실 축소와 폐쇄 문구 삭제 ▲재정중립 문구 삭제 ▲외과계 일차의료기관에 대한 정책 가산 추가 ▲환자안전 관리 ‘강화’를 ‘노력’으로 변경 등을 요구했고, 의협은 이를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 요구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도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협의 중단을 촉구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지난 2년 간 논의됐다고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너무 급격하게 추진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협 비대위는 성명을 통해 “의료전달체계는 국가의료 공급 시스템의 백년지대계로 충분한 목소리와 검토가 필요한 사안” 이라며 “의료공급자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에도 강행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도 반박에 나섰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대의원회 수임사항이며,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추무진 회장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협의될 경우 차기 회장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배수진의 조건도 내걸었다.
불발된 의료전달체계 개선
결국 금년 1월에 개최된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 회의에서는 권고문 확정이 불발됐다. 의협과 병협이 일차의료기관의 단기입원실 허용에 대한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1월말까지 의료계와 병원계가 합의해 온다면 재논의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병협이 긴급이사회를 통해 협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면서 최종 불발됐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작업은 의료계에 큰 상처만 남겼다. 집행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작업을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강행했다는 이유로 추무진 회장 불신임 임총이 개최됐다.
여기에 회장 불신임안은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지만, 대의원들은 현 집행부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추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데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졌다.
제40대 의협회장 선거에서도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중요한 화두가 됐다. 5명의 후보들은 3연임을 노리는 추무진 후보와 현 집행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작업을 비판하면서도, 의료 전달 체계 개선 자체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권고문 채택 무산으로 차기 의협 집행부에서 이를 재논의 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권고문 채택 불발에도 정부는 의료전달 체계 개선 작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새 수장을 선출한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라는 숙원 사업을 앞으로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