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 개선 대안 ‘개방형병원’ 도입될까
개원가-병원계, 시범사업 등 일정부분 합의···최종 병협 반대로 무산
2018.04.09 12:07 댓글쓰기

[기획 2]의료계 숙원 사업이었던 의료전달체계 개선 작업이 결국 불발됐다. 일차의료기관의 단기입원실 허용을 두고 개원가와 병원계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의미 있는 논의가 있었다. 개방형병원 시범사업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개방형병원은 이전부터 무너진 국내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할 대안으로 꼽혀온 바 있다.

병원계는 개방형병원이 의원과 병원 모두 사는 ‘윈윈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원가 등 의료계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개방형병원은 미국식이다.

개방형병원, 일명 어텐딩 시스템(Attending System)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다른 병원에 자신의 환자를 입원시키고, 해당 병원의 장비와 인력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다. 

미국은 의료인력 부족 해결 방안으로 개방형병원 제도를 도입했다. 적은 인력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고, 개방형병원이 해법으로 부상한 것이다.
 

미국식 개방형병원 탄생과 국내 도입 필요성

지난 1900년대부터 미국 병원들은 개원 의사들이 자신들의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의사들도 병원의 시설을 이용해 수술을 했다. 이렇게 시작된 개방형병원 제도가 확대돼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90% 이상의 의사들이 개방형병원 시스템 하에서 활동하게 됐다.

국내에도 이러한 미국식 개방형병원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의사 출신 국회의원인 정의화 전(前) 국회의장이 미국식 개방형병원 시스템의 국내 도입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정 전 의장은 지난 2016년 1월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국제 회의에서 “1945년 이후 의원 중심인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전문의사 시대에 맞게 병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미국식 개방형 병원모델을 의료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 참여했던 서울의대 김윤 교수도 개방형병원 제도화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다만, 의료계와 병원계의 합의사항이라는 주장이다.

김윤 교수는 “개방형병원이 도입되면 수술 수가가 인상되고, 병원에서도 수술비와 입원비 중 일부를 가져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개방형병원은 현행법에서도 충분히 시행이 가능한 제도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은 다른 의료기관의 장에게 동의를 얻어 해당 의료기관의 시설과 장비를 활용해 진료를 할 수 있다.

다만, 정부의 별도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 않아 관련 수가 등을 신설한 시범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병원계의 입장이다.

실제로 개원가에서는 개방형병원 제도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현행법상 가능한 부분인데 활성화되지 못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과계열 의사회의 한 관계자는 “개방형병원은 이미 실패했던 제도다. 현재도 가능은 한데 하고 있는 곳이 없지 않냐”며 “개방형병원의 성공을 위해서는 행정적으로든, 수가든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원이 없다면 또 다시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병원 입장에서도 환자만 데리고 있다고 해서 수익이 날 리가 없다”며 “지원이 있더라도 실질적이지 않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번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서 개방형병원 도입에 대해 어느 정도 논의가 진행됐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개방형병원이라고 하지만 개원가 입장에서는 개방병원 주치의제도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라며 “의원과 병원 쌍방이 이 시스템을 통해 상호 이득을 볼 수 있어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병원과 의원이 시설과 장비에서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의 시설과 장비를 의사가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병원 제도는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고 무한경쟁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도 개방형병원의 제도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개방형병원 전제가 일차의료기관의 입원실 포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병협은 일차의료기관의 입원실 포기 후 개방형병원 시범사업을 주장하고 있지만, 의협은 개방형병원을 도입하면 일차의료 기관의 입원실 운영은 자연스레 줄어든다는 입장이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란이다.

의협 임익강 보험위원장은 “개방형병원을 도입하게 되면 자연스레 입원실을 운영하는 의원들의 수는 줄어들 것”이라며 “우측통행을 유도할 때 왼쪽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오른쪽으로 다닐 때 이익을 주는 게 효과적이다. 개방형병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세제 지원·수가 신설 등 지원책 필요

이처럼 이번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에서 개방형병원 시범 사업은 의료계와 병원계 뜻이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의협과 병협의 협상 실무진이 개방형병원 시범사업을 전제로 일차의료기관이 단기입원실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데 까지 의견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병협이 긴급 개최한 이사회에서 의협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최종적으로 권고문 채택이 무산됐다.

병협은 개방형병원 시범사업 시행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의협 요구사항인 일차의료기관의 입원실 허용에 최종 반대 결정을 내렸다.

현행법상 개방형병원 사안은 개방형병원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그 수익이 병원과 의원에도 이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개방형병원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세제 감면이나 수가 신설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오영호 책임연구원은 ‘개방형병원 현황과 확대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질병을 가진 환자가 개방 환자로 치료를 받은 경우 해당 환자의 의료비는 누진율 적용에서 제외해 분리과세하고 세제상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며 “새로 개설되는 의료기관이 개방형병원 제도에 참여하려는 곳이 있다면 의료기관 개설 시 소요되는 세제 감면 조치를 시행해 개방형병원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책임연구원은 “개방형병원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분리해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내에서는 진료비용과 의사 비용을 분리하지 않고 있는데 개방형병원 제도를 위해서는 이들의 분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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