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부당 실손진료비 보험사에 토해내야'…잇단 반전 판결
맘모톰 절제술 등 논란…법원 결론 따라 환자부담·보험료에도 영향
2020.11.08 17:10 댓글쓰기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진료행위를 한 병원을 상대로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진료비를 돌려달라며 보험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1심 법원이 잇따라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년간 연쇄 패소(각하) 끝에 얻은 '반전' 판결에 보험업계는 고무된 분위기다.


8일 법조계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수원지방법원(지창구 판사)은 DB손해보험이 경기도 소재 A 외과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A 외과는 DB손해보험이 부담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신(新)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진료행위에 진료비를 청구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하며, 위법한 진료비를 부담한 보험사가 환자(보험 가입자)를 대신해 병원을 상대로 부당이득 환수 소송을 낼 권리를 인정했다.

 

DB손보를 대리한 법무법인 정솔의 신광현 변호사는 "검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시술에 진료비를 청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이라는 2012년 대법원의 임의 비급여 판례를 수원지법이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존에 다른 법원의 1심 재판에서는 병원이 미검증 진료행위를 하고 임의로 비용을 청구하는 '임의 비급여' 행위에 대해 제대로 심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줄줄이 각하 결론이 났지만 이번 수원지법 판결에서는 보험사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같은 사안을 다룬 다른 1심 재판부는 진료비 청구가 위법하다고 해도 진료비를 돌려받을 채권자 지위는 환자의 것이므로 보험사가 환자의 채권자 지위를 대신해 소송을 낼 권리, 즉 채권자 대위를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해 보험사의 요구를 각하했다.


그러나 수원지법은 "원고 보험사의 채권자 대위권 행사가 적법하지 않다면 보험사가 환자 수십명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이어 환자들은 병원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이는 소송경제와 분쟁의 실질에 반한다"고 지적하며 보험사가 부당한 진료비를 돌려달라고 병원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봤다.

 

올해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 소재 B 의원은 보험사가 낸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비급여 진료비를 반환했다가 작년 말부터 법원의 각하 결정이 이어지자 다시 진료비를 받아내야겠다며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황한식 부장판사)은 B 의원의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가 진료비 청구 대상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B 의원의 청구를 기각했다.


신광현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과 수원지법의 최근 판결 모두 부당한 진료비를 환자와 보험사에 전가한 일부 의료기관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며 "미검증 의료행위를 둘러싼 치열한 소송전의 흐름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검증절차 안 거친 의료행위에 비용 청구하면 위법"


2년 넘게 계속된 이번 소송전에서 다투는 진료행위는 '진공보조 유방 양성종양 절제술', 즉 맘모톰 절제술이다.

맘모톰 절제술은 침이 달린 맘모톰 장비를 이용해 유방 양성종양을 빨아내 제거하는 시술이다.

원래는 종양부위 조직을 소량 채취하는 검사장비로 개발됐으나, 점차 양성종양 제거술로 의료 현장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메스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과 비교하면 외상이 적어 환자들이 선호하지만, 수술만큼 완전하게 종양을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재발 위험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알려졌다.


맘모톰 절제술은 두 차례나 검증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논란 끝에 3수 만에 작년 8월에야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했다.


신의료기술평가 등 검증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임의 비급여 진료에 대해 진료비를 받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며, 절차성과 시급성, 환자 동의 같은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따라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기 전에 맘모톰 시술을 하고 진료비를 받은 것은 부당이득이므로, 병원은 진료비(보험금)를 부담한 보험사에 부당이득을 토해내야 한다는 게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신의료기술로 인정받기 전 맘모톰 시술에 지급된 실손보험 보험금은 손해보험업계에서만 1천억원이 넘는 규모로 추정된다.


DB손보뿐만 아니라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 실손보험 적자에 시달리던 보험사들이 대거 소송 대열에 합류했다.

 

◇ 보험사가 환자 대신 소송 낼 수 있는지가 쟁점


그러나 지난해 12월 맘모톰 절제술에 대한 첫 판결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삼성화재의 부당이득 환수 소송을 각하했다. 병원이 진료비를 청구한 상대는 보험사가 아니고 환자들이므로 보험사는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보험사가 환자를 대신해 진료비 채권을 행사하는 것, 즉 채권자 대위 소송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보험사가 부당이득을 되찾으려면 먼저 환자(보험 가입자)를 상대로 소송을 내야하고, 다시 환자가 병원에게 소송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중앙지법의 맘모톰 절제술 각하 논리는 2017년에 자기공명영상(MRI) 임의 비급여 소송에서 보험사의 채권자 대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와도 배치된다.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경우 건보당국이 임의 비급여 진료비를 병원에서 받아내 환자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의 각하 결정 이후 올해 들어 같은 판단이 줄줄이 이어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업계가 실손보험 적자를 타개하려고 병원을 상대로 무차별 소송전을 벌인다는 선입견이 작용해 관련 대법원 판례 등이 제대로 검토되지 못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법원의 최종 결정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각하 결정에 반발한 보험사들이 상급심의 판단을 요구하고 나섰고, 최근 패소한 의료기관들도 항소했거나 할 예정이다.


일부 1심 재판부는 다른 임의 비급여 소송의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소송의 결론은 맘모톰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최신 의료기술에 적용될 것이므로 앞으로 환자의 본인부담과 실손보험 보험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적자를 이유로 가입 대상을 축소하고 보험료를 계속 올리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천억원의 진료비 환수 문제가 걸려 있고 앞으로도 보험사와 보험료에 미칠 영향이 큰 사안이므로 법원에서 일관된 판단이 내려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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