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소중하고 작지만 아름답다'
안순범 데일리메디 대표
2012.10.29 22:27 댓글쓰기

택시를 타면 다양한 유형의 기사 분을 만나게 된다. 말 한마디 없는 돌부처 스타일에서 부터 입담 좋은 동네아저씨 같은 사람 등. 상냥한 인사를 받으며 탄 후 내릴 때까지 소소한 세상사를 주고받으면 왠지 사람 살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우수리 잔돈은 덤이다. 몇 푼 안되는 팁에 기사님 목소리는 경쾌해진다. "감사합니다~"


며칠 전 택시를 탔다. 한강 다리를 넘으며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자 하는데 기사 분이 백미러로 힐끔 힐끔 쳐다본다. 그러더니 말을 건네 온다. 나이가 어떻게 되냐 등을 묻더니 자신의 처지를 털어 놓는다. 공직을 중도에 관두고 민간기업에서 퇴직한 뒤 몸이 좋지 않아 3년 정도 쉬었다. 그러곤 지금의 택시를 하게 됐다. 개인택시를 위한 전초전 셈이라며 몇 마디 들어보니 성실하고 진실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다양한 경험담을 늘어났다. 본인이 흥분해서 성토를 하기도 했다.


기사 분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자신이 젊어서 일을 할 때 그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나 하는 것이다. “퇴직 후 쉬면서 너무 쪼그라들고 왜소해졌다”는 그는 “일 할 수 있는 직업을 소중하게 느꼈으면 더욱 충실했을 테고 현재 자신의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한탄에 가까운 속상함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내게 “지금 하는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라”고 권했다. “나이 더 들면 알게 된다”며 “열심히 일해야 덜 후회 한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리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누구나 나이 들면 후회하는 게 인생 아닌가. 후회가 없다면 감사도, 기쁨의 환희도 상대적으로 엷어질 테니까 말이다. 일과 직업의 소중함을 느끼라는 말이 평범한 듯 하면서도 새삼 소중하게 와 닿았다.


그러고 보니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일자리 창출이 화두다. 청년 실업은 고유명사가 됐고 사오정에 오륙도가 일상화됐다. 정년을 앞둔 베이비 부머들의 제2 인생 창업이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젊은 노인들의 일자리 역시 중요한 사안이 됐다. 올해 대선의 핫 키워드 역시 일자리다. 만사 ‘일자리’로 통하는 세상에서 일하는 자체의 즐거움과 가치를 잊고 있었던 것 아닌지 뒤돌아 보게 된다. 


최근 구두를 닦을 기회가 있었다. 자주 닦는 편은 아니지만 중요한 자리에 갈 때는 가끔 길거리 구두방을 찾는다. 구두 닦으러 가면 구두 닦는 분들의 손놀림을 유심히 살펴본다. 헌데 보면 맨손으로 구두약을 발라 광을 내는 분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보통 비닐장갑을 끼거나 면장갑을 이중으로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래서 가끔 “맨손으로 하면 손 씻기가 불편하고 더욱이 손에 안 좋지 않냐”고 물어본다. 그 날도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문에 현답이랄까. 그분 하시는 말씀이 “맨 손으로 해야만 광이 잘난다. 손님이 광 내러 왔는데 광이 안나면 되겠냐”고 말했다.


나도 몇 마디 거들었다. “광이 손으로 덧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이나 기름(석유), 불 등이 어느 시점에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게 아니냐”고 군대 시절을 떠올리며 무림의 고수에게 한 수 읊었다.


그랬더니 왈(曰) “내 만족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맨손으로 안하고 비닐장갑 끼고 할 수 있으나 마음이 편치 않단다. 비록 구두 닦는 하찮은 일이지만 마음 편하고 뿌듯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것이다. 그게 손 몇 번 씻으러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단다.


이날 5000원을 내고 거스름 돈을 받지 않았다. 광이 잘 난 거 같고 인생도 공부했는데 그깟 2000원이 무슨 대수겠냐 싶어서 였다. 구두를 닦고 나오면서 짧은 시간 만감이 교차했다.


발냄새 진동하는 구두를 닦어야 겨우 3000원 버는데 거기에 삶의 철학과 직업적 장인정신이 깃들여 있던 것이다. 구두닦이 아저씨의 3000원 인생철학이 나로 하여금 신발 끈을 다시 조여매게 했다.


살다보면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지만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중대사가 많다. 그런 일도 시초는 작은 것이다. 모든 걸 중후장대형으로 크고 위만 쳐다보니까 그렇지 세상살이는 어찌 보면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고 거기서 승패가 갈린다.


올림픽을 비롯해 빅매치 경기를 보면 메달 색깔을 가르는 것은 아주 미세한 차이다. 그 미세함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밑바탕에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노력과 연습이 배어있다. 한 사람의 땀방울과 눈물방울의 결합체가 빚어내는 산고의 결실 이어서 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우리네가 범사(凡事)에 감사하고 이를 아름답게 받아들이며 산다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하고 여유롭지 않을까 한다. 천고마비 계절 가을. 늘상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은 청명한 하늘. 이 평범한 푸른 하늘을 소중하게 느끼고 그 속에서 작지만 아름답고 강한 인생을 꿈꾸며 감사함을 지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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