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지고 난 뒤 빈 가지 꺾으려오?
MBC 김희웅 차장
2016.07.15 16:30 댓글쓰기

마적 떼가 등성이에 올랐다. 굴뚝을 오르던 밥 짓는 연기는 초가를 태우는 뻘건 불길로 바뀐다. 비명은 아득하나 점차 울림이 세어진다.

청나라 말기 동북삼성 지방의 한 마을. 저녁은 이렇게 밤이 되었다. 한평생 과거에 목매었으나 과거제는 폐지되고 말았다. 아내는 이미 죽었다. 노인은 독백한다. “목적이 없는 인생이란 좋은 거예요···” 노인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비적의 발굽에 짓밟히기 직전 노인의 독백을 떠올린다.

백척간두 순간에 자각하는 ‘행복’
오직 자아만이 자유로이 남아 버티는, 최고의 휴가의 경지에 대해 생각한다.
 

밤. 바다마을 시골집 마루의 평상.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씹고 치운 뒤 설거지까지 마쳤다. 혼자 또 무슨 술이냐는 구박은 그러니 귓등으로 넘길만하다. 동네 막걸리 한 병과 큰 대접, 접시에 김치를 담아 젓가락 한 쌍을 얹어 마당에 나왔다.

휴가 속 온전한 나의 휴가를 즐기려는 스스로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이제 그 즐거움을 본격 향유한다. 그래도 되었다. 많이 갈등했으므로 그럴 만한 자격도 있다. 휴가를 떠나는 날 새벽까지, 무언가 결정하여야 했다는데 쫓겼다. 짐을 꾸려 차에 오르기 전 갈등을 종결지었다.
 

縱浪大化中 (종랑대화중) 不喜亦不懼 (불희역불구)
應盡便須盡 (응진편수진) 無復獨多慮 (무부독다려)
<神釋(신석)> - 도연명

 

그저 흐름 속에서 , 기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으니
다했으면 끝내버리고 , 자꾸 돌이켜 생각 마시게
 

중국의 지셴린이라는 대학자는 위 시의 끝 두 구절을 <해야 할 일을 다했으니 / 더는 걱정 마시게> 로 해석하여 이 세상 노인들이 좌우명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했다. 죽음 앞에서 불안과 미련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에겐 그러나, 우연히 다가온 이 구절이 도망치던 앞길이 강으로 막혔을 때 펴보라는 보따리 속의 요술주머니와 같았다. 충분히 고민했으니 이제 그렇게 결정하여도 된다는 허락의 계시였다.

열심히 고민한 당신 떠나라! 바캉스 vacance의 어원은 ‘~로부터 자유로워짐’을 의미하는 vacation(바카치온) 이라니 과연 또한 휴가의 본질에 적합하다.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부터의 구속이 해제됐을 때, 그리하여 지금 현재에 가치를 집중시킬 때 휴가는 시작된다.
 

카르페디엠의 경지다.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生年不滿百 (생년불만백)   常懷千歲憂(상회천세우)
晝短苦夜長 (주단고야장)   何不秉燭遊(하불병촉유)
爲樂當及時 (위락당급시)   何能待來玆(하능대래자)

<古詩十九首>
 

백년도 살지 못하는데 천년의 근심이 가득하네

낮은 짧고 괴롭게 밤은 기니 어찌 촛불 잡고 놀지 않으리

즐기려면 바로 이 때여야지 어이 내년을 기다릴까.
 

지금 즐겁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지금을 모아모아 인생이다. 인생은 지금의 적분이다. 지금 행복하려 하지 않는 자가 어찌 내일의 행복을, 인생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려 할 것인가?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은 오늘을 살았던 힘의 관성이요, 오늘을 사는 이유는 어제 살았던 삶의 망각이다. 근심은 이 밤의 뒷덜미를 잡아 관성을 줄이는 저항이다. 지금을 살아나가는데 근심으로 무거울 수는 없다.

술은 망각을 키우는 윤활유다. 부드럽게 어제를 오늘로 이어 붙인다. 그러므로 술을 마셔 근심을 줄이는 것은 돌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는 격이다.
 

今朝有酒今朝醉 (금조유주금조취)
明日愁來明日愁 (명일수래명일수)
<自遣(자견)> 中 , 나은

 

오늘 아침 술 있으니 오늘 아침에 취하고,
내일 걱정 생기면 내일 걱정하련다
 

취(醉)한다는 것은 모두 내려놓고 오직 지금만을 잡는다(取)는 것이다.

취(取)한다는 것은 모두 내려놓고 오직 지금만을 잡는다(醉)는 것이다.

지금을 취하기 위해 술에 취하고, 술에 취함으로써 지금을 잡아 즐기는 경지다.

지금을 취하는 적극적인 경지는 이렇게 상통한다.
이백에게서 기개를 얻는다.
 

人生得意須盡歡(인생득의수진환)
莫使金樽空對月(막사금준공대월)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복래)
烹羊宰牛且爲樂(팽양재우차위락)
會須一飮三百杯(회수일음삼백배)
<將進酒(장진주)> 中 이백


깨우침이 있었다면 마땅히 그 즐거움 다하도록 누려야지
금술잔 바닥에 달빛이 비춰서야 되겠는가

하늘이 우리를 낳은 데는 반드시 쓰임이 있을 것이니
천금이 없어지면 또한 다시 오지 않을 것인가

양 삶고 소 잡아 맘껏 즐겨 보세나

한번 마시면 삼백 잔은 부어야 하지 않겠나


p.s
가슴 사이로 미끈한 청량함이 흐른다. 여름이다. 구르는 한 방울의 땀으로 게으른 나는 쉽게 치열함을 얻는다. 살아있음을 가장 잘 자각하는 계절이다. ‘지금’ 의 계절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노랫가락 차차차> 中

그리하여 다시금 청컨대
모두들 바로 지금 즐거웁기를...


勸君莫惜金縷衣 (권군막석금루의)
勸君惜取少年時 (권군석취소년시)
花開堪折直須折 (화개감절직수절)
莫待無花空折枝 (막대무화공절지)
<金縷衣(금루의)> . 두추랑


그대여 비단옷을 아끼지 말고 젊은 시절을 아끼오.
꽃 피어 꺾을 만할 때 꺾어야지,
꽃 지고 난 뒤 빈 가지 꺾으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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