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로 보는 불안과 다수의 선택'
전홍진 교수(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2016.08.07 20:48 댓글쓰기


브렉시트(Brexit)는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으로 만든 신조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말이다.
 

 2013년 1월 캐머런 영국 총리가 다보스포럼 참석 직전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2016년 6월 23일 진행된 투표에 참여한 영국인 가운데 51.9%인 1742만 명이 찬성에 표를 던지면서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됐다.
 

이민자, 난민 문제와 EU 회원국 금융지원 문제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탈퇴 여론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을 통해 브렉시트가 진행되는 과정을 전해 듣고 있자면, 국가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문제를 국제 분야 전문가가 아닌 국민 다수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오히려 국론을 분열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입장에서 영국인 다수는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진다. 다수의 결정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다수의 선택이 논리적인 판단보다는 불안, 불만, 두려움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극심한 인플레이션, 미국의 대공황 여파로 독일 국민들에서 불안, 불만이 매우 높았다. 1934년 국민투표로 히틀러의 대통령 겸임이 승인돘는데 당시 투표율이 무려 96%였고 찬성 역시 90%에 달했다고 한다.

1938년 독일군이 오스트리아로 진격하고 나서 오스트리아 국민투표에서 99.08%가 독일과의 합병을 찬성했고 모두 전쟁과 관련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를 통한 다수의 선택이 국민을 올바른 방향으로 항상 이끌지는 않는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경제위기, 테러 등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불안을 유발하고 있다. 불안이 적당한 정도로만 지속되면 긴장을 유지하고 실수를 줄이는 건강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일의 효율이 늘어나고 목표지향적인 행동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불안이 매우 커진 상태에서 오랜 기간 지속되면 우리 신체는 지나친 불안에 의해 과도한 긴장상태에 빠지게 된다. 특히, 테러 등의 사고가 예측 불가능한 빈도로 자주 발생하는 경우에 긴장은 더욱 높아진다. 코티졸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과 카테콜아민 등이 상시로 분비되어 긴장 상황에 대비한다.

이러한 호르몬은 심박동을 증가시키고 호흡을 빠르게 만들고 식은땀이 나게 한다. 주위에서 오는 사소한 자극이 모두 위협이 되지 않을까 계속 긴장을 하다보면 결국에는 우울, 불면, 스트레스가 발생하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목이 조이듯이 호흡이 갑자기 막히고 온몸의 힘이 빠지면서 공황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과다한 긴장상태에서 사람은 긴장을 유발하게 되는 자극을 피하는 회피(avoidance)의 방어기제를 취하게 된다. 예를 들어 테러에 대한 보도가 나온다면 공항에서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 보면 놀라서 피하게 되고, 경제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실직과 생계에 대한 공포가 생기면서 새로운 도전을 줄이고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집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으려 하고 여행도 잘 다니려 하지 않으며 외지인과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된다. 그리고 불안의 원인을 타인에게 투사(projection) 해서 해결하려고 생각하기 쉽다. 브렉시트가 결정되기 직전에 일어난 일련의 테러를 보면 영국인들의 긴장이 매우 증가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예상이 된다.    
 

여기에서 브렉시트 결정에 사용된 국민투표 용지를 한 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의 회원국으로 남아야(remain) 하는지 떠나야(leave) 하는지요?” 라는 질문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답안으로 구성돼 있다.

'Leave' 의미를 옥스퍼드 사전에서 찾아보면 '떠나다'는 의미와 함께 '새로운 곳을 향해 출발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Remain'은 '남다', '계속 유지하다'라는 뜻이 있다. 결국 대중이 불안하고 긴장이 높은 경우에는 현재를 회피하는 성향을 보이게 되고 'remain'보다 'leave'에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만일 'separate'와 같은 동사를 사용했다면 과연 EU와 분리하겠다고 했을지 궁금해진다.
 

결국 국민투표 결과가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로 방향이 결정된 것은 유럽인들이 '불안'과 '긴장' 상태에 있다는 의미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적인 불안과 긴장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회피'와 '투사'의 방어기제를 통해 자신과는 다른 환경, 인종, 지위의 사람과는 담을 쌓고 분리하려는 쪽으로 나가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전체 사회의 긴장을 증가시키고 불안을 유발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 및 '유머', '공감' 등의 성숙한 내용으로 이를 치환한다면 불안도 줄이고 서로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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