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제도 근본적 문제와 개선 방향
류재광 목포한국병원장
2016.11.04 18:45 댓글쓰기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로 중증응급환자가 적기에 치료받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다가 죽어간다는 이야기는 2~30년 전부터 계속 나오는 이야기였다. 작년 메르스 때 삼성의료원 응급실이 무너진 이유 역시 응급실 과밀화로 신속한 입원이 안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였다.
 

사실 정부는 이러한 응급실 과밀화와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30년전 응급의료제도를 정비한바 있다. 이때 태어난 것이 프랑스의 SAMU나 외국제도를 모방해 만든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 그리고 지역응급의료기관이다.


또 이를 육성하기 위해 10여년 전 교통사고 과태료와 범칙금의 20%를 응급의료기금으로 조성해 응급의료제도를 교정하고 육성해왔다. 권역외상센터의 지정과 육성도 이 기금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제 시행 초기단계다.


그런데 이러한 응급의료제도가 응급의학과 위주로 운영되고 있고 권역외상센터가 외상외과 위주로 발전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전문의의 역할은 교통순경 정도면 된다. 실제 중증응급환자를 빨리 진단하고 이 환자를 수술하거나 중환자실로 옮겨서 응급실 과밀화를 정리해주는 진료과는 응급의학과가 아니라 외과계다. 즉 신경외과, 흉부외과, 외과, 정형외과, 그리고 내과에서 응급환자를 중환자실이나 수술실로 빨리 옮겨줘야 응급실 과밀화가 해소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응급의료발전을 위한 응급의료수가 적용과 응급센터기준이 응급의학전문의 수에 의해 조정됐기 때문에, 응급의학전문의의 보수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천정부지로 뛰어버렸다. 젊은 의사들은 당직시간만 근무하면서도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응급의학과로 몰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증환자를 진료하고 정리해줘야 할 외과계나 내과계의 레지던트는 씨가 마르고 있다. 대형병원마저 지원자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며 당직제도마저 운영할 수 없을 지경으로 변해버렸다.


만약 1년이라도 규정보다 적은 레지던트를 확보할 경우 다른 레지던트에게 그 일이 전가돼 버리는 구조다. 그나마 일하고 있던 그 레지던트마저 일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 버리기도 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보험제도의 잘못된 수가보정 기전이 근본 원인"

40년전 필자가 의대 학생일 때는 공부 잘하고 유능한 학생들은 내과나 외과, 즉 메이저과라는 내, 외, 산, 소를 전공하려 했고, 이로 인해 이러한 과들의 경쟁률은 굉장히 높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역전돼 오히려 성적 좋은 학생들이 당시 기준 마이너과를 먼저 지원하고 내, 외과계를 지원하지 않는 기현상이 발생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향후 5년 뒤에는 우리나라 중환자 진료나 수술을 해야 할 의사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렇게 왜곡된 전공의 시장의 판도는 바로 1976년에 재정돼 지금까지 실시되고 있는 의료보험제도의 잘못된 수가보정기전 때문이라 생각한다. 1976년 처음 의료보험수가를 시행할 때는 일본의료보험수가의 50~60% 아니 심지어는 10분의 1로 줄여서 시작했다는 소리마저 있었을 정도다.


또 당시에는 주로 내, 외, 산, 소 등의 메이저과 진료수가위주로 의료보험제도가 시작됐다. 마이너는 그 당시만 해도 그렇게 크게 발달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가는 이후 의료보험체계로 진입하게 되면서 충분히 보상된 수가로 결정됐다. 특히 CT, MRI, 특수 진단검사 수가는 1976년에는 아예 없었으며 일반관행수가로 운영되다 2000년대에 의료보험수가로 진입하게 된다.


이렇게 결정된 의료보험수가의 보상기전으로 매년 물가상승률보다 못한 병원수가 인상률을 곱해 의료수가가 결정돼왔다. 이러한 수가결정 구조 때문에 해가 반복될수록 내, 외, 산, 소의 수가는 엄청난 저수가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마이너 수가나 CT, MRI, 특수진단검사 수가는 계속 상승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마이너과, 특히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은 비급여를 양산할 수 있는 과이기 때문에, 현재 젊은 학생들은 야간에 고생하지 않으면서도 보수는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이들 과를 1순위로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꼭 있어야할 내, 외, 산, 소를 기피하는 경향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1976년에는 1회용 수술가운이나 모자, 마스크, 수술용 드랩 뿐만 아니라 현재 수술방에서 사용하는 모든 비급여 재료가 없는 상태에서 수술수가가 정해졌다. 사실 그때는 수술을 할 때 수술포만 놓고 실크만 가지고 수술하는 병원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해진 수술비에 현재 감염예방을 위해 사용한 1회용 재료나 발달된 수술재료를 수술비에 포함됐다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수술비보다 더 많은 원가를 차지하는 상기 재료대를 병원이 환자로부터 비급여로 받게 되면 심평원이 실사를 통해 적출, 과징금을 물리고 이에 해당하는 기간만큼 병원 운영을 정지하고 있다.


이렇게 하니 어느 누가 고생해서 밤잠 못자고 수련해서 내, 외과 전문의를 취득하려 하겠는가.


즉 비급여를 무조건 줄이려고만 하지 말고 수술과 진료에 필요한 정당한 급여는 의료보험수가로 급여화 시켜주거나 법정비급여로 전환해줘야만 내, 외과계 지원자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규제 일변도 정책 바꿔야만 제도 취지 살릴 수 있어"

응급의료문제는 응급의학과와 외상외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권역외상센터 운영도 원래 취지대로 24시간 당직체제를 확실히 하도록 하고 당직시간이 아닌 비당직 시간에는 전속전문의에게 자유를 부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역외상센터 설립의 원취지는 중증외상환자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일반응급실이 혼잡하거나 의사가 없어서 제때 제시간에 처치와 수술을 받지 못하면 사망하거나 큰 후유증이 남을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외상전용응급실, 소생실, 수술실, 중환자실을 별도로 운영하고 외상을 전담하는 신경외과, 흉부외과, 외상외과, 외과, 정형외과 전문의를 당직제로 움직이게 하고 보조과로 응급의학과, 내과, 마취과, 방사선과가 들어가도록 제도가 짜여졌다.


그런데 당직을 열심히 선 후 자기 당직시간 외 비번인 시간에 다른 환자를 봤다고 엄청난 패널티를 부여하는 이런 잘못된 제도 운용으로는 절대 권역외상센터는 올바로 갈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맞지 않는 월 1000만원의 보수(세금포함)를 주면서 외상센터 환자만 진료하도록 강요하면 그 의사는 외상센터를 떠날 수 밖에 없다. 우리병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권역외상센터에 이송되는 ISS 15점 이상의 중증환자가 1년에 300명 내외다. 즉 하루에 한명내지 두명 꼴의 중증외상환자가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당직을 서는 외과와 내과, 그리고 응급의학과 의사 등 여러 과의 의사는 거의 7~8명, 어떤 경우 열명도 넘는 상황이다.


이 의사가 당직을 서며 환자 한두명을 본 후 그 다음날 비번일때도 다른 환자를 진료해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외상전담의들은 외상센터에서 근무하기를 기피할 것이다. 의사란 자기를 따르는 환자,  내가 볼 수 있는 환자가 많을 때 의사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또 재미를 느껴서 더 열심히 하게 돼있다.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 대학병원과 비대학병원 간의 임금차이가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지금처럼 규정만 앞세우는 이런 제도로는 지방 비대학병원 외상센터는 경영난으로 없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상센터 당직을 서지 않아 환자진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패널티를 주는 것은 옳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규제 일변도로 제도를 운영하면서 국가에서 의사 봉급만 보조해주는 형태로는 절대 외상센터는 자생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속담에 고기를 잡아주기 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한다는 말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돈을 보조해주기 보다는 외상센터를 운영함으로써 거기에 이익이 될 수 있게끔 서서히 보완을 해줘야만 한다.

시작할 때는 국가에서 돈을 주면서 보조를 했지만 이제 운영단계에 들어가면 월급을 보조하는 것보다 외상센터 스스로가 노력해서 성장할 수 있는 제도로 바꿔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전주 2세 남아 사건을 계기로 손톱 밑에 비접만 제거하려 하지 말고 심장과 허파에 고름이 차고 있는 것을 빨리 진단해 이것을 제거할 수 있는 의료제도의 전반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외과계와 내과계 수련제도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대한민국 국민이 바라는 의료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