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연명의료결정법 의미와 향후 과제
고윤석 교수(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2017.01.16 10:46 댓글쓰기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의료기관의 바람직한 임종과정은 국민 복지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총 267,200명의 사망자 중 의료기관 사망이 71.6%를 차지했고 의료기관에서의 사망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의 사망이 증가함에 따라 환자의 사망과정에 의료인들이 더 깊이 관여하게 됐다.

임종환자 연명치료 지침으로 2001년 대한의학회의 ‘무익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이나 2009년 10월 13일 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그리고 대한병원협회가 합의한 연명치료중지 지침이 마련됐으나 이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고 의료계 관심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삶을 마무리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지속돼 2016년 1월 8일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 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이 마련되기 전 시행된 조사에서 응답 의료인의 50%, 말기환자의 51.6%, 환자 보호자의 47.3%가 "연명치료 중지에 관련된 법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법률은 말기환자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임종기환자의 연명의료 유보나 중지에 관한 내용을 함께 담고 있다. 병에 의한 사망이 질환의 말기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임을 고려할 때 완화의료와 연명의료에 관한 규정을 하나의 법으로 묶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기와 임종기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민들이 말기환자 호스피스와 관련된 법령과 임종환자의 연명의료 중지 법령의 내용을 혼동할 수 있을 듯 하다. 실제 의료인들조차 ‘말기’와 ‘임종’ 그리고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에 관련된 각 법령의 내용을 구분해서 숙지하기가 쉽지 않다.

상기 법이 발효되면 의료인은 법적 요건이 충족되는지 살펴본 후 말기환자와 임종기환자의 향후 의료 방향을 계획하고 결정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호스피스의 경우 호스피스 전문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비 지원이 연계돼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의료현장의 혼란도 예상된다.

의료인과 환자 가족 사이의 말기환자나 임종기환자 의료결정에 관한 갈등은 드물지 않고 때로는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환자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기대, 환자가 바라는 삶의 질, 치료 의미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 의료비 부담, 법적 환경, 환자 간호의 어려움 등의 다양한 변수들이 의료 결정과정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에서의 힘겨운 삶의 마무리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극심한 고통을 남긴다. 이를 위해서는 이 법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위법령이 잘 마련되고 또 연관된 환경도 개선돼야 한다.

이번 법률에서는 말기질환을 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과 만성간경화를 대상으로 제시하고 '그 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으로 규정했는데 대상이 되는 말기질환군과 말기 상태에 대한 임상 판단의 지침과 임종기 판단에 대한 지침도 마련돼야 의료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침은 의료현장의 다양한 상황을 특정 수치나 상황에 대한 정의로써 질환군에 따른 다양한 특성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이는 의학 발전에 따라 현재 우리가 정의하고 합의하는 지침조차 변경돼야 하며 또한 그 의미의 해석이 해당 환자와 가족 및 의료진들 사이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의료현장에서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은 의사와 환자 그리고 환자의 가족들과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의학적 결정 시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은 흔히 담당의사 판단에 의존하게 되므로 해당 치료의 의학적 의미를 알고 있는 의사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의사는 그 시점에 통용되는 의료 윤리와 의학 지식에 근거, 수행 중이거나 수행될 연명의료 의미를 환자와 가족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현재 행해지는 치료나 행하고자 하는 치료가 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망의 시간만을 연장할 가능성이 높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 치료는 중지되거나 유보되어야 한다. 그런 치료의 중지가 환자의 가족들이 치료의 포기로써 받아들이지 않도록 잘 설명하여야 하고 매 순간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인들은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떤 의료환경에 놓이든 삶의 마지막에 이르는 과정이 가정에서 보다 병원에서 더 힘들게 되어서는 연명의료 질이 높아질 수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연명의료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할 때 적법한 연명의료 결정을 위한 법은 필요하고 이제 그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다만 그 법은 죽음의 질이 세계 1위인 영국의 사례에서와 같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나가야 한다. 연명의료를 직접 수행하는 의료인들의 연명의료에 대한 인식제고와 수행 능력 또한 지속적으로 향상돼야 한다.

법률에 따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제 9조)과 사전의료의향서 등록기관(제 11조)을 둬 사전의료의향서 관리, 연명의료의 질과 환자 가족들의 만족도 등을 감시하고 필요한 정책을 개발해야 하는데 이 기관들의 자리매김이 어떻게 되는 지에 따라 향후 우리 사회의 연명의료 수준과 만족도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법률의 범주는 의료기관으로 한정돼 있지만 현실은 다수의 노인 사망은 의료기관 외에도 의료인이 상주하지 않는 노인요양원과 같은 장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를 자연사로 간주하고 논외로 할 것인지 아니면 국가기관에서 요양원의 사망 과정을 돌볼 것인지도 향후 논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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