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병원선과 대한민국 현실의 '병원선'
이우용 교수(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외과)
2017.11.24 09:32 댓글쓰기

[기고]최근 병원선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주인공인 하지원씨는 팔이 썩어가는 환자의 팔을 자르고(물론 멋지게 다시 붙였지만), 숨이 넘어가는 응급환자들을 주저 없이 수술장으로 끌고 들어가 살려내기도 했다.

외과의사인 필자도 감탄이 나오는데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얼마나 멋지게 보였을까 싶다. 그러나 하지원씨가 실제 우리 주위의 병원에 근무한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며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사망,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 1등급 등의 의료분쟁 조정 자동 개시요건을 주요 내용으로 한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이 시행 된지 1년이 지났다.

누군가에게는 신해철 법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중환자 기피 법으로 불리며 논란이 많았다.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이런 논란들이 해결됐는지 알 길은 없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은 법 시행 후 1년간 278건의 자동개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자동개시건수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예측한 수치에 훨씬 못 미친다며 더욱 활성화 할 것을 주문한다. 또 일부에서는 의료사고가 아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난 안 좋은 결과를 이유로 자동조정신청을 한 경우가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이 시행된 초기 필자는 모 병원의 교수로부터 말기암 환자가 수술뒤 암이 재발해 몇 년에 걸쳐 수 회의 제거 수술을 했고 결국에는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들은 의료진에게 최선을 다해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주 후 가족들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자동조정신청을 했다. 해당 교수는 앞으로 환자를 볼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분쟁조정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른다.

물론 자동개시건수 278건 중 의료사고에 해당해 환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분쟁조정의 결과가 신청자와 의사 모두에게 합리적 결정이라고 받아들여 진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이 아직도 자동개시 당위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중재원의 중립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생명이 경각에 달린 중환자를 보는 외과계와 중환자의학과 응급의학과 등 의사들에게 분쟁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가 또 얼마나 많은 환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10%의 생존 가능성이 있는 응급수술 환자를 병원선에 나온 하지원씨처럼 주저 없이 수술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생존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들은 자동개시로 중재원에 출두해야 하고, 몇 개월간의 마음고생을 겪어야 한다. 이들을 단순히 양심 없는 의사로 몰아붙이기만 할 수 있는 것일까.
 

법은 이미 시행됐다. 그런데 논란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법 시행 이전의 분쟁에 대해서도 자동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사망,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뿐만 아니라 모든 의료분쟁을 자동 중재하자는 주장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의 정신에 맞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의 원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의료사고는 당연히 구제를 받아야 한다. 이미 중재원뿐만 아니라 소비자원 등 기관에서 법률적 판단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행위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올 수는 없다. 이를 염두하지 않고 의사는 가해자, 환자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 생각한다면, 드라마 병원선 속의 하지원씨와 같은 의사는 나오기 어렵다.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 같다'는 우려는 나만의 걱정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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