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병(重病)’ 선고받은 친구. 그런데 다른 의사 진단은···
이찬휘 데일리메디 논설위원
2017.12.26 11:38 댓글쓰기

‘따르릉~~ 따르릉~~’

그날 따라 전화벨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렸다.

나는 거의 매일 밤 10시 전에 잠이 든다. 어릴 때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벽형인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평생 아침 방송을 도맡아 했기에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그래서 밤 10시 이후에 걸려오는 전화는 거의 받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주 그날은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아 아내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늘 듣던 같은 벨소리인데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았다.

전화를 받았더니 제일 친한 친구인 A였다. "찬휘야 나 암 걸렸대." 평소 목소리가 카랑 카랑해 전화로 들어도 정신이 번쩍 나던 A였는데 거의 다 죽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영혼이 반쯤 나간 목소리였다. 나도 갑자기 멍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임파선 암이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비장, 폐, 간으로 다 전이 됐대. 골수로도 전이 됐을 수 있다고 해서 골수검사까지 했어.’

‘임파선 암 말기래’ A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꾹꾹 눌러 참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나 어떻게 하니?’ 나도 너무 A의 갑작스런 암 통보에 둔기로 머리를 한방 맞은 듯 멍하더니 가슴이 미어져 왔다. ‘A가 암에 걸렸다. 그것도 말기란다. A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A의 가족들은? 아직 자식들은 하나도 결혼 안했는데···. A를 앞으로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순식간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A와 나는 SBS에서 만난 친구다. A는 MBC에서 왔고 나는 KBS 출신으로 SBS가 개국할 때 합류했다. A는 카메라촬영기자로 나는 취재 기자로 만나 수많은 아이템을 같이 취재했다. A와 처음 취재 나간 아이템이 대덕연구단지였던 것 같다. 내가 과학전문기자로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해 취재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거의 매주 한번 이상 A와 원자력연구원, 기계연구원, 화학연구원, 전자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등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연구원을 탐방하면서 시청자에게 우리가 개발한 신기술을 알렸다. 그리고 의학전문기자 시절인 1998년부터는 당시 매일 저녁 8시뉴스에 방송했던 ‘SBS 건강리포트’를 제작하기 위해 전국의 병원을 돌면서 건강 상식은 물론 새로운 치료법과 예방법을 보도했다.

나는 10년 전 SBS를 나와 외주제작사를 차렸고 A도 퇴사해서 나와 함께 10여 편의 건강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러다가 나의 제안으로 A가 K대학의 교수로 가게 됐다.   

A가 암에 걸렸다는 말에 갑자기 멍했던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암은 원인이 스트레스라던데, 잘 지내고 있던 친구를 K대학으로 보내 암에 걸린 건 아닐까? 혹시 나랑 다큐멘터리 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게 원인은 아닐까? 평소에 내가 툭툭 던지던 말이 상처된 건 아닐까? 미안하고 갑갑하기만 했다. 그러다 ‘다른 의견을 들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에게 긴급 제안을 했다. A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며 동의했고 나는 임파선 암 치료로 유명한 S병원으로 예약을 했다. 다행히 진료일이 빨리 잡혀 A는 말기  암으로 진단했던 I병원의 검사 자료를 들고 S병원으로 갔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 드렸다.

그런데 진료 후 S병원 의료진은 ‘말기 암이 아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치료 받아도 괜찮을 착한 암이다. 이 암은 완치율이 90%가 넘는다.’ 라고 진단하면서 “다음 주부터 치료를 시작하자‘ 라고 말했다. 너무나 기뻐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A는 물론 A의 가족 모두 일주일동안 초상집이었다. 염라대왕 책상 앞에까지 갔다 온 A는 S병원에서 진료 결과를 들을 때 또 한 번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살았구나!’ 라는 생각에···.

A는 이번 주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나는 치료를 잘 받고 완치되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리고 암 같은 중병에 걸렸을 때는 다른 의사에게 꼭 ‘두 번째 의견을 받아봐야 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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