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문화를 바꾸게 될 '연명의료결정법'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2018.03.12 13:05 댓글쓰기
우리 모두는 각자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

모든 삶은 태어날 때나 죽을 때 고통의 시간을 경험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따뜻함과 안정감을 누리며 지나다가 출생의 순간 극심한 추위의 고통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첫 호흡과 함께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젖을 무는 순간 곧 안정감을 찾는다. 인간이 죽음을 맞을 때도 여러가지 육체적 고통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도 죽음에 대한 준비가 돼있지 못하거나 홀로 죽음을 맞을 때에는 극심한 고독과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하다.
 
2018년 2월 4일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3개월의 시범사업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생명윤리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법안은 사회 각층과 종교계의 동의를 이루어낸 점과 죽음에 대한 문화를 바꾸는 굉장한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을 계기로 오랜 숙의 끝에 합의에 이른 법이지만, 인간이 만든 법이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가치나 생각이 제 각각이고, 법 해석과 적용에 대한 자세도 달라서 혼란스러운 부분이 발견된다. 개선하고 보완해 가야할 부분들이 남아있다. 극단적인 대립이 아닌 환자들의 편에 서서 환자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방법이 무엇이며, 의사의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인정해주는 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우려되는 점과 바라는 점을 나누고 싶다.
 
먼저 우려되는 점이다. 첫째, 이 법안의 명칭을 ‘존엄사법’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s)이란  1997년 미국 오레곤 주에서 만들어 시행하는 법으로, 죽음을 원하는 말기환자에게 극약을 스스로 먹게 하는 의사조력자살(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이었고, 그 후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음식물을 중단해서 사망케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시행한 법이다.

단지 존엄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기에 좀 고상해보이니까 언론에서 그냥 가져다가 사용하는데, 현재 무의미한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적용할 수 없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존엄사법이 아니다.
 
두 번째 걱정되는 부분은 생명윤리에서 말하는 '미끄럼틀' 효과다. 일부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하는 단계에서 점차로 식물인간 처리와 안락사 담론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여 평안한 죽음을 맞도록 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결정법이 미끄럼틀 효과를 유발하여 안락사나 식물인간을 죽이는 법으로 발전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법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생명존중 사상을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바라는 것은 이번 법안의 시행과 함께 죽음에 대한 문화가 변했으면 한다.

죽음은 패배나 저주가 아니고 누구나 한 번은 거쳐 가는 삶의 과정이기에 죽음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죽음을 그리스어로 타나토스(Thanatos)라고 한다. 죽음은 사랑과 함께 가장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순신장군이 군사들에게 남긴 말 중에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라는 말이 있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 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평소에 삶을 잘 사는 사람이 좋은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한다. 남의 것을 빼앗고 거짓말과 욕심을 채우는 탐욕스러운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앞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주어진 시간을 남을 배려하며 정직하고 가치있게 살 것인지 스스로 돌아봤으면 한다. 인생의 가을이 와서 마지막 삶을 정리할 때 한 평생 보람있게 잘 살았다고 스스로에게 말 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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