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린 ‘수가협상’ 과연 해법은 없을까
건보공단, 밴딩 폭 미공개 원칙 고수한 채 '상생협의체' 가동
2016.07.13 06:30 댓글쓰기

전체 타결 의미는 컸다.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공급자단체가 결렬 없이 2017년 유형별 환산지수 계약에 도장을 찍었다. 

마감 시한을 살짝 넘긴 지난 6월 1일 새벽, 소리 없는 쾌재가 흘러나왔다.

17조원의 건보재정 흑자와 맞물려 밴딩 폭도 늘어났고 각 단체 역시 나름대로 선방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긍정적인 협상의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적지근한 부분은 존재한다. 바로 수가협상의 방식이다. 2주간 릴레이로 이어지는 협상은 답답하기 그지없는 눈치싸움의 연속이었다.  
 

2017년 건강보험수가 평균 2.37% 인상
우선 수가협상 결과를 들여다보자. 2017년도 수가협상은 전체 2.37% 인상으로 최종 의결됐다. 밴딩 폭도 전년 6503억원에서 8134억원으로 1630억원이 늘어났다.

내년도 건강보험수가는 의원 3.1%·병원 1.9%·약국 3.5%·치과 2.4%·한방 3.0%의 인상률이 적용된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초진료와 재진료는 450원, 320원씩 오르며 상급종합병원의 경우는 330원, 260원씩 증가한다.

건보재정 5년 연속 당기 흑자 및 약 17조원에 달하는 최대 누적 흑자와 함께 지난해 메르스 사태 및 의약계의 어려운 경영 현실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대한의사협회 김주형 수가협상단장은 “만족할 만한 숫자는 아니지만 3.1% 인상에 합의했다. 공단 측도 의원급 의료기관을 어려움을 많이 공감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메르스 사태도 있고 점유율도 하락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한병원협회 조한호 수가협상단장 역시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단 협상단도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국민건강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공급자는 공급자대로, 보험자는 보험자대로 2017년 수가협상은 큰 논란 없이 만족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마무리됐다. 3년 만에 결렬 없는 협상이 진행된 것은 무엇보다 큰 성과다. 
 

선(先) 심의·의결 후 계약체결
2017년 수가협상의 성과는 잠시 뒤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역대급 협상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사실 그 과정은 예년과 같았다.

수가협상 시기가 다가오면 보험자-공급자간 상견례 진행으로 그 서막을 알리지만, 사실상 형식적 인사치례에 불과하다. 보험자나 공급자나 “힘들고 어렵다”는 하소연으로 시작해 “잘해봅시다”로 마무리된다.

핵심은 수가협상이 진행되기 약 1주 전 열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소위원회 회의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수가협상 밴딩 폭 상한선이 결정된다.

이 수치는 재정소위와 건보공단 수가협상단만 공유하며, 공급자단체는 명확한 파이를 알 수 없는 상태로 협상에 들어간다.

건보공단 수가협상단은 재정소위가 정한 수준 내에서 공급자단체와 계약을 체결한 후, 전체 재정운영위원회 의결을 받는다.

통상 이렇게 진행되지만, 실질적 계약 절차 상 재정위의 심의·의결 절차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공급자단체장들은 매해 수가협상이 진행될 때 마다 “밴딩 폭을 숨기며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갑을협상이나 마찬가지다. 수치를 드러낸 상태에서 협상이 진행돼야 서로의 논리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재정운영위 권한이 너무도 막강하기 때문에 협상이 아닌 통보다. 이러한 부분이 개선된 협상을 원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최종 기일인 5월 31일까지 수치가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무의미한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약 2주간 공급자단체별로 진행되는 1~3차 협상은 상견례에서 건넨 이야기들을 데이터로 재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실상 마지막 날 협상이 전부 진행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 2016년 유형별 환산지수 보고서에도 ‘선(先) 심의·의결 후 계약 체결’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계약 기한 전 특정 시점까지 의약계 대표자들이 사전적으로 계약 조건에 합의하고 5월 31일 이전까지 재정위원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완료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급자에게 기존과 동일한 협상 기간을 충분히 부여할 수 있도록 기존 일정보다 앞당겨서 협상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최종 협상 당일에 몰아치는 구조가 아닌 선제적으로 수치를 제시해 최종일에 결정만 하는 구조를 말한다. 절차 상 문제도 있지만, 환산지수 결정 과정에서 계약 당사자 간 주장이 상충되는 원인은 양측 모두 합의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초자료 부재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보험자는 공급자로부터 원가 및 경영실적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기 위한 기전을 확보하고, 수집된 자료를 환산지수 계약에 활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된 방법론을 개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자료는 수가협상 이외에도 보험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유용할 수 있다.

건보공단은 수가협상 과정이 개선돼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고 있지만 밴딩 폭 공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장미승 급여상임이사(수가협상단장)는 “수가협상 진행과정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의약계의 요구처럼 밴딩 폭을 사전에 공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장 이사는 “밴딩을 보여주고 협상에 들어가는 것은 포커게임에서 카드를 보여주고 승부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일축했다. 

조재국 재정운영위원장 역시 “수치를 보여주고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최하위 등급의 협상이다. 틀을 유지하려면 지금과 같은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보험자가 주장하는 밴딩 폭 미공개 원칙은 고수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밴딩 폭이 먼저 공개되면 보험자와의 협상이 아닌 공급자단체 간 순위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밴딩 폭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에서 변화의 여지는 열려있다. 

앞서 언급했듯 릴레이 협상에도 뚜렷한 진전없이 5월 31일만 기다렸다가 협상이 마무리되는 것은 보험자도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절차 상 문제도 있지만, 환산지수 결정 과정에서 계약 당사자 간 주장이 상충되는 가장 큰 원인은 양측 모두 합의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초자료 부재라고 볼 수 있다.

공급자와 보험자 간 협의를 통해 공급자로부터 원가 및 경영실적 자료를 지속적·체계적으로 수집하기 위한 기전을 확보하고, 수집된 자료를 환산지수 계약에 활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된 방법론을 개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료는 수가협상 이외에도 보험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향후 지불체계 개편, 보장성강화 등에 대응하여 원가자료를 기반으로 한 수가개발 및 수가조정이 가능해지며, 공급자의 경우 의료기관의 원가 및 경영정보를 경영효율성 증진을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건보공단은 의료계와 함께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수가협상을 비롯해 다각적 차원의 개선방안을 모색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협의체 운영방침이나 참여할 인물 등 세부사항은 조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소통의 틀을 열어두겠다는 방침이 세워진 만큼 향후 수가협상이 어떤 방식으로 바뀔지 귀추가 주목된다. 
 

공급자 “적정수가 확보 여전히 시급한 과제”
2.37%, 결렬 없는 협상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공급자 단체는 수준 높은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적정수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협상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바뀌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수가협상 체결식 자리에서 “모든 단체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가지 않고 모일 수 있어서 밝은 마음이다. 국민들과 함께 고통을 분담하려고 하는 의료계와 건보공단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추 회장은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를 가는 우리 사회의 움직임과 그걸 보는 지속가능하고 보편타당한 보험이 돼야 한다는 공단의 방향성, 국민들이 바라는 높은 수준의 의료 제공을 위해서는 적정수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 홍정용 회장 역시 “전 유형 타결은 의미가 크다. 이번 수가협상은 보험자가 공급자를 많이 배려해 준 결과다. 그렇다고 해서 협상 구조를 그대로 갖고 간다면 의료환경이 변화할지는 미지수”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공급자단체는 내년도 수가협상 결과만을 두고 보자면 긍정적이지만, 밴딩 폭 사전 공개 불가방침 등 주요 안건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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