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과학고 등 영재학교 재학생들의 의과대학 진학 저지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장학금 회수는 물론 졸업자격 박탈 등 초강수까지 동원되는 모습이다.
의과대학 진학이 대입업계의 지상 과제인 점을 감안하면 의과대학 진학 저지에 사활을 거는 이들 학교의 행보는 사뭇 낯선 풍경이라는 반응이다.
경기도 내 유일한 영재학교인 경기과학고는 최근 의학계열 대학에 지원한 졸업생들에게 재학 중 지급한 장학금 전액을 회수했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는 학교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내린 조치다. 올해 2월 졸업생 중 23명(장학금 총액 1억2600여만원)이 첫 회수 대상이 됐다.
경기과학고 재학생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은 수업료를 제외한 ▲연구활동 ▲국제교류협력활동 ▲진로체험활동 지원비로, 1인당 3년 간 약 550만원이다.
주목할 점은 의과대학에 들어간 자교 학생들에 대한 패널티 부여는 비단 경기과학고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울과학고와 광주과학고도 이 학교와 같이 의학계열 대학 진학 학생들의 장학금을 회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2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는 이 같은 제재가 전국 8개 모든 영재학교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또 모든 영재학교는 ▲진학 지도 미실시 및 대입 추천서 제외 ▲학점 표기 없이 석차만 기록된 학교생활기록부 제공 ▲의학계열 지원 시 기숙사·독서실 이용 제한 등의 조치도 한다.
한국과학영재학교는 2013년부터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의 졸업 자격을 박탈하는 강수를 뒀다. 이후 의약계열에 지원하거나 합격한 학생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공계 인재 양성 취지에 어긋나는데 졸업생 20%는 의약학 계열 진학
영재고·과학고 학생, 의대 입학 금지법 추진
사실 영재학교들의 이러한 행보는 이미 예견된 바 있다.
경기‧광주‧대구‧대전‧서울과학고, 한국과학영재학교,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등 8개 학교는 지난 4월 '영재학교 의학계열 진학 제재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했다.
2022학년도 입학전형 모집 요강부터 반영키로 한 제재 방안에 따르면 영재학교에 응시하려는 학생과 보호자는 응시원서에 명시된 제재 방안에 서약해야 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
서약에는 영재학교 입학 후 의약학 계열로 진학을 희망하거나 지원하는 학생의 경우 학교는 대학 진학 상담, 진학 지도를 일절하지 않고 일반고 등으로 전출을 권고한다고 명시됐다.
대입전형에 필요한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연구활동 등 영재학교에서 추가로 운영되는 교육과정을 기재하지 않고 창의적 체험활동 등 일부 항목을 공란으로 처리해 제공한다고 돼 있다.
아울러 의학계열 진학을 희망 학생에게는 정규 수업 이 외에는 기숙사와 독서실 등 학교 시설 이용이 제한되고, 재학 중 지급받은 장학금도 반납해야 한다.
특히 8개 영재학교는 현재 재학생의 경우에도 학교별 상황에 맞게 의약학 계열 진학 제재 방안을 최대한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재학교들이 의학계열 진학 제한 조치는 ‘이공계 분야 우수 인재 양성’이라는 학교 설립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안팎의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8월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 재학 중인 영재학교 졸업생 3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9.3%(65명)가 의학계열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학교장협의회는 “영재학교는 이공계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학교인 만큼 졸업생이 의약학 계열로 진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등학교 학생의 의학계열 대학 진학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지난 5월 영재학교와 과학고 졸업생의 의학계열 진학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과학 분야 인재를 양성하려고 설립한 학교이지만 졸업생이 매년 의약학 계열에 진학해 학교 설립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재학교나 과학고에 대한 예산 지원에도 의약학 계열에 진학하는 것은 다른 학생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