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산부인과 전문의 부족과 고위험 분만 시스템 위기가 연일 화두에 오르고 있다. 특히 권역모자의료센터 조차 산과 필수인력 기준을 채우지 못하는 등 현장 상황은 한계점에 다다른 산부인과 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권역모자의료센터로 지정된 상급종합병원 20곳 가운데 절반 가량인 11곳이 필수기준인 전문의 4명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산부인과 학회가 집계한 기타 지표를 살펴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분만 건수는 12.5% 감소했으며, 분만 수행 전문의 역시 21.3% 줄었다. 더욱 심각한 점은 2013년과 비교해 분만 가능 기관 수가 40%나 급감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분만실이 1~3개에 불과한 분만 취약 권역은 전국 16곳에 달해 의료 공백이 현실화되고 있다. 데일리메디는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재관 이사장(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을 만나 대한민국 산부인과가 처한 위기를 타개할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분만 연령 증가로 고위험 임신 비율이 40%에 육박하고 있지만 전문의는 턱없이 부족하다. 형사처벌 공포로 분만실을 떠나는 의사들을 붙잡기 위해 5~10년에 걸친 대대적인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분만현장 인력 확보가 어려운 근본적 원인으로 세가지를 꼽았다.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공포다.
민사적 배상은 정부 대책으로 어느 정도 해결 실마리를 찾았지만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사고에 형사 기소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산과 의사들 사명감이 꺾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원가 보전율이 50% 수준에 불과한 낮은 분만수가와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환경까지 더해지면서 전공의 기피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타과의 경우 150%, 200%까지 이를 상황을 살펴보면 산부인과의 상대적 박탈감은 과를 기피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지방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경기 지역으로 인력이 쏠리면서 지방 의료센터는 1~2명의 전문의가 24시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다.
이재관 이사장은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결국 지방 분만인프라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위험 임신 40% 시대…총체적 대책 없이는 5년 내 파국
분만 연령이 높아지면서 고위험 임신 비율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전체 분만의 약 35.9%가 고위험 임신으로 분류되며, 조만간 40%를 넘어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고위험 산모가 늘면서 대학병원과 권역센터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정작 현장에는 의사가 없고 신생아중환자실(NICU) 병상도 부족해 산모와 신생아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이 이사장은 단순한 수가 인상이나 단편적인 지원책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의료사고 보상제, 인건비 현실화 등 ‘패키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전문의 양성에는 최소 5년 이상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향후 5년 동안은 현재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립중앙의료원 내 중앙모자의료센터 기능을 강화하고 산부인과·소아과 학회가 협의체를 구성해 유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뇌성마비 국민적 오해 해소와 신뢰 회복 ‘절실’
분만현장 신뢰를 무너뜨리는 또 다른 요인은 뇌성마비 등 장애 발생에 대한 오해다.
많은 국민이 뇌성마비를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 과실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분만 중 발생한 문제로 인한 뇌성마비는 10% 미만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임신 전후 발생한 내재적 원인에 기인함에도 결과에 대한 책임이 의사에게 전가되면서 의료진과 환자 간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국가 우선 배상시스템 도입 절실”
이 이사장은 일본이나 대만처럼 분만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국가가 우선 배상하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법 리스크 해소가 전공의 지원율을 반등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국가가 1차적으로 배상을 책임짐으로써 안전한 분만 문화를 조성하고, 전문학회가 사고 원인을 면밀히 검토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산부인과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산모와 아이 모두 안전한 출산환경이 완성될 것”이라며 “의료진과 환자 간 신뢰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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