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선천성심장병, 특히 신생아와 영아의 복잡 심장병 치료는 의료진 한 사람 능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소아심장과와 소아심장외과, 소아심장마취, 소아중환자의학, 체외순환사, 숙련된 간호인력 등 여러 분야 전문인력이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환자 많지 않지만 치료과정 복잡, 응급상황도 다반사”
환자 수가 많지 않은 반면 치료 과정은 복잡하고, 응급상황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는 경험과 시스템도 필요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선천성심장수술에서 일정 수준 이상 진료량(volume)이 중요하다는 관점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여러 해외 연구에서도 수술 건수가 많은 기관에서 특히 조기 수술 성적이 우수한 경향이 보고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취지로 소아심장 수술을 소수 병원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필자가 정수인 아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함께한 연구에서는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해 2012년, 2017년, 2022년 국내 소아·청소년 선천성심장병 수술과 심도자술 지역별 분포를 분석했다.
“선천성심장수술은 거주권 밖 실시 증가, 심도자술은 감소”
그 결과, 선천성심장수술은 서울로의 집중이 뚜렷했다. 실제로 전체 수술의 절반 이상이 환자가 거주하는 권역 밖에서 시행됐다.
반면 심도자술은 지역의 진료 역량이 증가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시술받는 비율이 2012년 29.2%에서 2022년 15.2%로 감소했다.
이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고난도 진료의 적절한 집중화와 지역 진료 역량 유지는 서로 상충하는 목표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아심장수술 규모는 연간 2000례 안팎으로 크지 않다. 저출생이 지속되면서 앞으로 전체 수술 건수는 더욱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모든 시·도마다 독립적인 소아심장수술센터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대로 수도권의 몇몇 병원만을 남기고 나머지 지역의 수술 역량을 없애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는 수도권 외에도 몇 개의 권역 소아심장 거점센터를 국가 차원에서 선정해 집중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남, 호남, 충청 등 일정한 인구와 생활권을 포괄하는 권역마다 정상적인 소아심장 진료와 수술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거점이 있어야 한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단지 지역에 병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그 병원을 이용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이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부모가 더 경험이 많고 성적이 좋은 병원을 찾으려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지역 거점센터는 보호자의 애향심이 아니라 실력과 신뢰로 선택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센터가 적절한 수술 건수를 유지하고 있는지, 치료 성적은 적정 수준인지, 중환자 진료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지를 지속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수술 사망률과 합병증 등 치료 결과 역시 가능한 범위에서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 거점센터는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도 단순히 ‘지역병원에 지원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거점센터가 높은 수준의 질을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그 성과에 대해 적극적인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소아심장 진료는 시장 논리만으로 유지되기 힘든 매우 중요한 ‘필수의료’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력, 즉 사람이다.
한 명의 숙련된 소아심장외과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수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사 한 사람만 있다고 소아심장수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와 같이 개별 병원이 모든 인력을 스스로 확보하고 유지토록 맡겨 놓으면 지역 병원은 버티기 어렵다. 어렵게 양성한 핵심인력이 수도권 병원으로 이동하면 프로그램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권역 거점센터의 핵심 전문인력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인건비 지원, 교육과 연수 기회 제공, 인력 충원을 위한 별도의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설에 대한 지원도 마찬가지다. 소아심장수술을 안전하게 시행하기 위해서는 소아용 심폐기와 심폐보조장치(에크모), 인공호흡기 등 고가 장비가 필요하다. 환자 수만을 기준으로 경제성을 계산한다면 지역 거점센터가 이런 시설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소아심장 진료는 시장 논리만으로 유지되기 힘든 필수의료다. 일정한 진료 수준과 성적을 충족하는 권역센터라면 적자를 보전하는 차원을 넘어, 좋은 의료진이 그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적극적인 보상이 필요하다.
병원 간 연계로 끊기지 않는 소아심장 진료 지향
국가적인 의료전달체계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지역 병원에서 선천성심장병을 진단하고, 권역 거점센터에서 대부분의 진료와 수술을 담당하며, 극고난도 수술이나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한 환자는 그 질환에 특화된 전국 단위 고난도센터로 의뢰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이후 환자가 안정되면 다시 지역 거점센터에서 장기 추적관찰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서울에서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 선택을 일방적으로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 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를 이용하는 환자와 가족에게 진료비, 교통·숙박 등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병원 간에는 환자의 진료 정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의료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선천성심장수술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소아심장전문의와 소아심장외과 의사는 수술 환자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수술 후 부정맥이나 심부전, 심근염, 심근병증 등 갑자기 발생하는 중증 소아심장질환 역시 지역에서 치료해야 한다. 지역의 소아심장 인프라가 한 번 무너지면 이런 아이들까지 모두 수도권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생각해야 한다. 지방에 사는 부모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기차와 택시, 때로는 버스를 갈아타며 낯선 서울에 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
선천성심장병은 한 번의 수술로 끝나는 경우만 있지 않다. 이후 여러차례 검사와 시술, 재수술을 위해 수년 동안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환자와 보호자도 많다. 치료 결과만큼이나 이러한 사회적 비용과 가족 부담도 의료정책에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장기적으로 지역 의과대학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좋은 병원을 만들려면 좋은 의사가 있어야 하고, 좋은 의사를 지역에 남게 하려면 그 지역에서 교육받고 연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 지역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교육·연구 역량을 높이는 것은 소아심장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필수의료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투자다.
“고난도 치료는 경험 많은 곳으로 집중시키되 지역에도 역량 있는 거점센터 존재 절실”
소아심장 진료 미래를 논하면서 ‘집중화냐 지역화냐’ 중 하나를 선택할 수는 없다.
고난도 치료는 충분한 경험을 가진 곳으로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역에도 정상적인 진료와 수술, 응급치료와 장기 추적을 담당할 수 있는 강한 거점센터가 존재해야 한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환자가 서울로 쏠린 결과를 ‘집중화’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적절한 권역을 정하고, 거점센터 질(質)을 평가하고, 사람과 시설에 투자하며, 각 거점센터들이 특성에 맞는 고난도 수술을 시행하는 서로 연결되는 의료체계, 즉 ‘계획화된 집중화’를 설계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질문은 ‘소아심장수술 병원을 몇 개 남길 것인가’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어디에서 태어난 아이든 가장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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