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병이라면 이제는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김유현 같이건강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가정의학과 전문의)
2026.09.28 08:44 댓글쓰기

2018년 정부는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비만을 국가가 관리해야 할 건강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그동안 비만 치료는 크게 달라졌다. 새로운 비만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이전보다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졌고 비만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비만이 단순히 의지가 부족하거나 생활 습관을 관리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재발과 악화를 반복하며 장기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인식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오랫동안 비만을 진료하고 비만과 함께 살아온 당사자로서 이러한 변화는 반갑다. 그러나 정작 그 관심의 중심에 있어야 할 비만 환자와 그들 건강은 여전히 뒤로 밀려나 있다.


비만 치료 목표는 ‘날씬함’ 아니다


비만치료제를 둘러싼 이야기는 흔히 “몇 kg이나 빠지는가”, “얼마나 날씬해지는가”와 같은 체중과 외모 변화에 집중된다. 반면 정책과 제도에서는 ‘오남용’에 대한 우려가 먼저 강조된다. 


정작 비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지, 왜 치료가 필요한지, 치료를 통해 건강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비만 치료의 목표는 ‘정상체중 만들기’가 아니다. 당뇨병 치료가 모든 환자 혈당을 정상인 수치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처럼 비만 치료 역시 숫자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비만으로 인한 동반질환과 합병증 위험을 줄이고 환자가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비만치료제 발전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이전보다 더 많은 체중을 감량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 감량한 체중 이상으로 혈당과 대사 상태를 개선하고 여러 비만 관련 질환의 위험을 낮출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만이 한 번에 완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뇨병과 고혈압처럼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다룰 수 있는 치료 수단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비만치료제가 여전히 ‘살 빼는 주사’로 불린다. 이러한 인식이 빠르게 확산된 데에는 치료제가 도입되고 사용된 방식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만대사수술을 제외한 약물치료 대부분이 비급여 영역에 남아 있다. 


비만을 질환으로 관리할 공적 틀을 마련하기보다 비급여 시장에 먼저 맡겨지면서 치료제는 미용이나 ‘럭셔리 다이어트’ 영역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누가 처방받고, 얼마나 효과를 보는지, 언제 중단하는지, 안전성은 어떤지를 공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하는 체계는 뒤따르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정말 비만을 다른 만성질환과 같은 ‘질병’으로 대하고 있는가.”


오남용을 줄이려면, 비만 치료를 건강보험체계 안으로


질병이라고 인정한다는 것은 단지 질환명을 붙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필요한 사람이 진단받고 근거에 기반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면 이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비만치료제 급여화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오남용 우려 의약품’ 지정은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물론 비만치료제의 부적절한 사용은 막아야 한다. 적응증에 맞지 않는 처방이나 충분한 평가와 추적 관리 없이 사용하는 문제는 분명 관리가 필요하다. 


다만 ‘오남용 우려’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실제 유통과 처방 과정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지는 별개 문제다. 


오히려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까지 ‘오남용’ 이미지가 덧씌워진다면 치료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고 필요한 의료에서 멀어지게 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정책을 논의할 때 실제 치료받는 당사자의 경험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ICOMES 2026에서는 대한비만학회 최초로 비만 당사자가 참여하는 환자 세션을 진행했다.


세션에서 소개된 ‘글로벌 비만 환자 헌장’은 존엄과 낙인 없는 치료, 근거에 기반한 평생 치료, 공정한 치료 접근성과 당사자 의사결정 참여를 핵심 원칙으로 제시한다. 


왜 치료를 시작하지 못했는지, 왜 중단했는지, 치료비가 어떤 부담이 됐는지와 같은 당사자 경험 역시 더 나은 치료와 정책을 설계하는 중요한 근거가 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남용을 줄이는 방법 역시 치료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데만 맞춰지면 안 된다고 본다. 


필요한 환자가 적절한 평가를 거쳐 치료를 시작하고 의료진의 지속적인 관리 아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며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비만 치료를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관리하는 방향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든 비만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급여를 적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만 치료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한다는 것 역시 단순히 ‘비만 환자 약값을 대신 내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치료에 쓰는 비용보다, 치료하지 않아 생기는 비용을 보아야


비만은 당뇨병과 심뇌혈관질환을 비롯한 여러 만성질환과 연결되고 이에 따른 의료비와 생산성 손실은 이미 상당한 사회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7년 약 12조 원에서 2021년 약 15조6000억원으로 증가했으며 연평균 약 5%씩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제 가격이 높은 만큼 더욱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건강 위험이 높고 비만 관련 질환을 동반해서 향후 의료비 부담이 큰 환자, 즉 치료에 드는 비용보다 치료를 통해 줄일 수 있는 질병 부담과 사회적 비용이 더 클 것으로 기대되는 집단부터 단계적으로 보장을 시작하는 것이다. 


정책 질문도 ‘비만치료제에 얼마나 돈을 쓸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부터 치료하는 것이 더 큰 건강상 이득과 사회적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치료 효과와 안전성, 실제 의료비를 지속적으로 평가하면서 보장 범위를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다.


‘비만은 질병’이라는 말, 이제는 정책으로 보여줄 때


비만과 비만 치료를 둘러싼 질문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많이 감량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비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오남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어떻게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치료를 제공할 것인가.


비만을 질병이라고 인정한다면 필요한 사람이 근거에 기반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치료받는다는 이유로 낙인찍혀서도 안 된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실제 비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경험 역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


“비만은 질병”이라는 말이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정책으로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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