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치매 환자 치료와 돌봄에는 경제적 여건을 살피는 일이 필수적이다. 약을 구입해 제때 복용하는지, 병원에 갈 교통편은 있는지, 식사를 거르지 않는지, 주거는 안정적인지, 가족의 돌봄이나 요양서비스를 충분히 받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모든 일상에는 비용이 따른다. 그러나 통장에 잔액이 있어도 진료비를 내지 못하고, 연금을 받아도 생활비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평생 모은 재산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치매 환자 재산관리가 치료와 돌봄 문제이기도 한 이유다.
정부가 2026년 4월 시작한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다.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등으로 재산관리에 어려움이 있거나 경제적 학대 위험에 놓인 어르신을 위해 국민연금공단이 맞춤형 재정지원계획을 세우고, 신탁계약에 따라 재산관리와 지출을 지원한다. 의료비를 비롯해 요양비, 생활비 등이 필요한 곳에 쓰이는지 점검하고 지역 돌봄서비스와도 연결한다. 경제적 착취를 예방하면서 치매 환자 생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다.
의료인 관점에서 특히 신중히 살펴야 할 부분은 경도인지장애 환자에 대한 판단이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는 상태지만, 반드시 치매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진단명만으로 재산관리 능력이 없다고 간주하거나 미래 악화를 전제, 재산권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질병 진단 및 재산관리 지원 필요성, 서비스 계약을 이해하고 동의할 능력은 구분해야 한다. 공과금 납부를 자주 잊는 사람도 본인 재산을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맡기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일상 대화가 자연스러워도 복잡한 금융거래 위험을 판단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이 의사결정 능력의 상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대상자 평가는 ‘치매로 악화될 것인가’보다 ‘지금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생활비와 청구서를 관리할 수 있는지, 반복적인 송금 실수나 사기 피해가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계약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파악하며, 선택지를 비교해 뜻을 표현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쉬운 설명과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 뒤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의 의사결정 능력 지침도 진단명보다 구체적인 결정과 평가 시점에 따른 판단을 강조한다.
정부와 관련 전문학회는 진단서를 작성할 의사에게 명확한 공통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인지검사 점수 하나로 능력의 유무를 가르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진단서가 질병을 확인하는 문서인지, 특정 재산관리 행위에 대한 능력까지 평가하는 문서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표준 서식에는 평가한 결정 종류 및 생활기능, 본인 이해와 의사, 제공한 지원, 판단 근거와 한계를 기록토록 해야 한다. 섬망, 우울, 약물 영향, 청력 저하처럼 평가를 왜곡할 요인도 확인해야 한다.
판단이 어려울 때 전문평가 의뢰, 재평가와 이의제기 절차도 필요하다. 가족 설명에는 이해관계가 개입할 수 있으므로 본인 면담과 객관적 자료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의사 임상적 소견 및 운영기관 이용 요건 심사, 법원의 후견 판단이 맡는 역할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한 장의 진단서가 과도한 권한 제한의 근거가 되거나 의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일본 제도는 참고할 만하다. 사회복지협의회의 ‘일상생활자립지원사업’은 판단 능력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서비스 계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상적인 금전관리와 복지서비스 이용을 지원한다. 본인 희망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상태 변화에 맞춰 조정한다.
‘후견제도지원신탁’은 일상적으로 쓰는 돈과 별도로 보관할 자금을 구분하고, 신탁재산 인출 등에 가정재판소의 지시서를 요구한다. 지원과 함께 관리 권한의 남용을 견제하는 구조다.
제도가 정착하면 환자는 자신 돈으로 치료와 돌봄을 꾸준히 받고, 가족과 후견인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다만 재산을 지킨다는 이유로 필요한 지출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간병과 치과치료는 물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익숙한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비용이 든다. 사업 성과는 신탁된 총액이나 남은 잔액보다 환자의 건강과 일상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무엇보다 재산을 보호하려는 제도 자체가 치매 노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본인이 충분한 설명을 듣고 가족이나 기관의 압박 없이 자유롭게 선택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서명 한 번으로 확인을 끝내지 말고, 운영 과정에서도 본인 의사와 불편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의사 표현이 어려워져도 과거의 뜻과 현재의 선호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권한 제한은 필요한 범위에 그쳐야 하며 세심한 운영과 독립적인 감독, 신속한 피해구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경계할 것은 치매 노인 재산을 경제적 활용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다. 현재 사업이 사회적 투자를 목적으로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잠자는 자산 활용’이나 ‘사회적 투자 재원 확보’가 앞세워진다면 본래 취지는 흔들릴 수 있다.
공익이라는 명분도 본인 의사와 이익을 대신할 수 없다.
재산 운용은 당사자 필요에 부합해야 하며, 안전성과 필요한 때 돈을 쓸 수 있는 여건이 우선돼야 한다. 경제적 성과를 위해 환자에게 위험을 떠넘기거나 필요한 지출을 억제해서는 안 된다.
서비스 이용이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신탁을 이용하면 재산을 정부에 빼앗긴다는 잘못된 소문에도 정확한 안내로 대응해야 한다.
기억이 흐려져도 재산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돈에는 한 사람의 노동과 절약,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다. 이 제도가 지켜야 할 것은 치매 환자가 남은 삶을 본인 뜻에 가깝게 살아갈 권리다. 의료인으로서 바라는 성공 역시 환자 돈이 환자 본인의 치료와 돌봄, 오늘의 존엄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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